이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요다-여리고 앞 모압 평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백성이다.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인구조사를 실시할 때 계수한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두고 "그들은 죽을 것이다. 광야에서 죽을 것이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63-65)
대대적인 인구조사를 하지만,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심정은 어떠한 것일까?
지난 날 자신들의 과오를 생각하며 후회했을까, 아니면 이러한 처사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을까.
어찌되었듯 맞이한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결과를 보면서 과거를 후회하게 되는 때가 있다.
내가 좀더 성실했더라면... 내가 좀더 실질적으로 생각했었더라면... 좀더 열심히 운동했더라면... 먹을 것을 가리며 살았더라면...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지난 날 내가 내린 선택과 삶의 결과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것은 퇴행적인 것일 뿐이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오늘 나의 삶에서 최선을 일구어내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25장에 보인 배역이 혹시 좌절감으로 인한 것이었을까?
어차피 가지 못하는 가나안땅이며, 누리지 못할 것들은 이 세상에서 쾌락적으로 풀어보려고 했을까?
미래의 소망이 사라진 이들의 패악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이 희미해지고 미래의 소망이 미약해지는 작금의 분위기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행동들이 더욱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성경적 신앙이란, 영원의 관점에서 현재를 해석하는 것이다.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아가자.
사랑해야 할 이를 사랑하며, 의미있는 일에 나를 내어주자.
기도
오늘 하루에 집중하며 온전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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