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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사람들

아라를 보내며

아라를 안지는 10년쯤 된 것 같다. 

동명교회에 있을 때에 나를 찾아왔다. 

고민이 가득해 보였고, 상처받아 꺾인 듯한 모습이었다. 

필리핀에 공부를 하러 갔으나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잠시 돌아온 상태였다.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좋은 마음으로 필리핀까지 갔지만 마음에는 상처만이 남아 있었다. 

다시 그곳에 가야 하나, 삶의 방향전환을 해야 하나. 그런 이야기를 몇번 만나서 했었다. 

 

그렇게 간간이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했다. 

다시 필리핀에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고민이 생기면 가끔씩 찾아오곤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이 친구가 이 세상에 의해서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려는 시도가 어디에선가 열매맺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인 해남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어느 신문사에선가 일하려고 한다고도 했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광주에 올 일이 있으면 만나서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살다보니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다 작년부터 스마트팜으로 딸기농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딸기농장이었다. 

올리는 글을 보니 기쁨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해남의 여러 소식들을 전하는 블로그를 하기도 했다. 

 

문자를 확인하다가 아라의 부고를 접했다. 

잠시 눈을 의심했다. 

며칠 전에도 아라가 남긴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연락을 해보니 큰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허망하고 황망했다. 

비로소 웃는 모습을 보나 싶었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보내기에는 내가 아쉬웠다. 

아라의 동생과 통화하며 그곳의 아라의 친구들과 함께 작은 추모모임을 하기로 했다. 

아라가 즐겨부르던 찬양을 부르며 기도하는 모임을 갖자고 했다. 

 

모임이 시작되었다. 

아라가 즐겨부르던 찬양들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찬양들이 묘하게 일찍 세상을 떠나간 아라가 결심하고 이 세상을 떠나간 것인가 생각하게도 만들었다. 

 

아라의 가족들의 이야기, 아라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아라에게 듣고 싶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라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라의 순수한 믿음이 이들과 함께 있어서 가능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라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라는 땅끝이라 불리우는 이 해남에서 자신의 선교의 길을 찾았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라는 그곳 해남에서 여러 삼촌 이모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갔다. 

그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존재였다. 

외롭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친구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아라와 가까이 지낸 친구는 아라가 유일한 자기편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익이 나면 필리핀 쓰레기섬 아이들을 돕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했다. 

아라는 땅끝에서 필리핀과 연결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선교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증언하며 사는 것이다. 

아라의 삶의 고민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이야기나누지 못한 후반부의 이야기를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아라의 삶은 나름의 완결성을 가지고 귀결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 둘의 나이. 

갓 시작된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된 스마트팜 딸기 농장. 

아라는 하늘나라에 가기 전날까지 자신의 농장을 찾는 유치원생들로 인해 노심초사 했다고 한다. 

첫 견학이었고 잘해 보고 싶었나 보다. 

사고가 있던 밤에도 무슨 일인지 농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쉽기 그지 없다. 

못해 본 것이 많은 인생이라 서럽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과 죽음은 함께 한다. 

전도서 저자는 청년들에게 그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과 죽음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것은 한 세계 속에서 공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하루를 하루답게 살아내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양 살아가는 사람들 천지다. 

더 높은 곳에서, 더 인정받는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이 인생인 줄 아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아라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꿈을 찾아 인생의 의미를 찾아 과감하게 옮겨다니며 살았다. 

그래서 어느 곳 하나 토박이가 되지 못했다. 

페북에 아라의 부고를 올렸을 때, 교회 사람들도 아라를 잘 기억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아라는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삶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글을 남긴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진솔하게 살아갔던 서른 둘의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갔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의미없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고민의 귀결을 맛보고 하늘 나라로 갔다.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