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AFbfNMR_hWk
나는 매일 후회합니다 오늘도 자주 망설입니다 걷다가 문득 멈춰섭니다 넘어지면 잠시 쉬어갑니다 하늘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섭니다 비바람 불면 무섭습니다 꽃향기에 숨을 쉽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이신데 나는 그냥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그가 사람이셨듯 나도 존귀한 사람입니다 나는 늘 괜찮은 척 합니다 오늘도 자꾸 넘어집니다 웃다가도 눈물납니다 피곤해도 끝내 걸어갑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이신데 나는 그냥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그가 사람이셨듯 나도 존귀한 사람입니다 나도 사랑이고 싶습니다 참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가 온전한 사랑이시듯 그가 온전한 사람이셨듯 사랑이고 싶습니다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가 사랑이신 것처럼 그가 사람이셨던 것처럼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하면 좋은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믿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과 좋은 사역 혹은 좋은 교회와의 인과관계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척을 하고 몇년을 열심히 무언가를 시도하고 부딪히면서 살았던 것 같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이겨내야 할 문제였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결국 이 시점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문제다.
나라는 사람의 한계와 부족함은 고스란히 어떠한 문제로 드러난다.
그 문제 앞에서 결국 발견하는 것은 내 자신이며, 그것이 너무도 뚜렷이 보여서 괴롭다.
나라는 사람을 벗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한계와 함께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엄연한 사실을 붙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오늘도 고민한다.
오랜만에 다시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하고 있는 나자신이 낯설다.
내가 설명을 하고 주장을 하는 내 자신이 더욱 자각되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설교하는 게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때 이 길을 계속 가야하나 고민했다.
고스란히 드러나버린 나의 민낯을 가지고 나는 사역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능숙하게 목회라는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이 짐을 넘겨버리고 나는 자유로우면 안될까.
그런 생각 중에서도 나를 붙들었던 것은 예수 또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는 것이다.
사람이셨던 예수는 이 세상을 사람으로 사는 것에 대한 곤고함을 아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사람으로 살고 있는 나는 그 곤고함의 끄트머리를 느끼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사람답다는 것은 그래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온다.
내가 사람 아닌 그 무엇을 뒤집어쓸 때는 그것을 덜 느꼈던 것 같다.
이제 사람두껍을 인식하고보니 그 부끄러움이 진하게 다가온다.
조국을 둘러싸고 악귀처럼 달려드는 그들을 보며 내가 느끼는 것은 신기함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들 중에 기독교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또한번 의아했다.
어떻게 부끄러움 없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부끄러워하며 살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을 통해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모든 일에 겸손해야 한다.
그러다 내가 더이상 할 일이 없다면 당연하게 여기며, 더욱 사람답게 살아야 겠다.
주일을 앞두고 설교를 해야 하는 내가 민망해져서 글을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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