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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기

[영화] 자백 : 폭력의 구조는 멀리 있지 않다

영화 '자백'을 보았습니다. 


탐사저널리즘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죽어가는 탐사저널리즘이 대한민국의 치부를 들추어냅니다. 

결론적으로 왜 탐사저널리즘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는지...

그리고 왜 탐사저널리즘이 필요한지를 증명해 냅니다. 




무엇보다도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뉴스타파 팀의 기자정신입니다.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을 다루면서 기자정신으로 맞짱을 뜹니다. 

게다가 매우 끈질깁니다.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다 자살을 한 탈북자에 대한 탐사보도를 위해서 중국으로 여러 번 날아가고, 

북한에 있는 딸에게까지 접근하는 끈질김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건 스포인가요?)


무엇보다도 제게 인상깊었던 장면은 다음의 장면이었습니다. 

전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에게 다가가서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사과할 마음이 있는지를 끈질기게 묻는 최승호 기자를 향하여 우산 아래서 보여준 모습은 소름이 돋게 했습니다. 

캡쳐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세훈과 그의 아내로 추정되는 여인은 뚜렷한 비웃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최승호PD를 향해 '웃기고 있네.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하고 이야기하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순진한 것들이 세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헛힘을 쓰고 있다는 상황인식.

되지도 않을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고방식. 

어디에선가 본듯한 사고방식과 표정들입니다. 

저는 그 인식이 비어져 나오는 바로 그 표정들이 소름끼쳤습니다. 


누군가는 40년전 시작된 고통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데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간취급을 받지도 못하고 취조를 당하는데도,

그들은 그들의 아픔이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그리고 세상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유우성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진들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며 그들의 인상좋음에 놀랐고, 동네아저씨 같음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인상좋은 미소를 흘리며 기자의 질문을 흘리기만 했습니다. 

그들의 퇴근장면은 너무도 우리네 비즈니스맨들의 그것과도 같아서 그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들이 하루종일 힘쓴 일은 죄없는 사람을 죄있는 사람만드는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없는 증거를 만들어내고, 공증서까지 위조하는 일이었는데 말이죠. 



사람을 죽이는  지독한 폭력이 우리네 일상에 버젓이 존재함에도 우리는 그저 살아갑니다. 

그러한 폭력적 사고와 인간성을 배제한 의식은 우리의 직장에, 심지어 우리의 교회에도 존재합니다. 


사람에게 주목하지 않고, 사람의 아픔에 주목하지 않는 우리의 둔감함이 폭력적인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인간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는 모든 구조는 폭력을 만들어냅니다. 

그 가운데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그러한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면 누가 우리의 이웃이 될 것인가?

뉴스타파 기자들이 그리고 민변의 변호사들이 그리고 잠깐 얼굴 아래만 등장했던 재심전문 박영준 변호사 같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에서 그 허접한 위조공문서를 확인하러 연변에 기자들이 가지 않았다면 유우성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상 가운데서 이웃은 없고, 배제만이 판을 칩니다. 

폭력은 존재하되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폭력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그리고 그 구조에서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는 인간소외만이 존재합니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보고 국가가 괴물이 되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분단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괴물을 보아야 합니다. 

그 괴물이 만들어낸 국정원의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이는 세력 앞에서 누가 이웃이 되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런 좋은 영화를 보고 확산시키는 이웃 정도는 해야 부끄럽지 않을 역사적 행보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