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보아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그저 그 시대를 충실하게 살았을 뿐인데 되돌아보면 해석되는 것이 있다.
내가 살아간 세대를 해석하는 일이 그러하며, 그 세대의 특성은 그 다음의 것을 설명해주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우리 세대의 전형적 모습을 풀어내어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일명 X세대들은 풍성한 문화를 누렸던 세대였다.
5공화국의 과외금지조치로 인해서 사교육시장이 활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수업 위주, 학력고사라는 그나마 평준화된 시험방식으로 인해서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시절이었고, 독하게 맘먹고 공부하면 몇년 안에 우등생이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자신이 자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시대였고, 풍성한 문화가 억압적 문화을 뚫고서 피어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과학동아, 보물섬과 같은 잡지들이 생겨난 것은 그 당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급격하게 보급된 워크맨은 다양한 음악을 즐기며 자기를 형성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기에 청소년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한류문화의 근간으로 성장해 갔다.
90년대 음악을 이끌어갔던 이들이 한류문화를 만들어 갔고, 그 문화는 전세계가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 되었다.
한류 드라마나 영화의 근간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대의 유산으로 보인다.
X세대들의 문화적 토양은 교회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당시 교회들은 문학의 밤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때의 교회들의 문학의 밤은 꽤 수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아들 딸이 등장하기에 의미있는 학예회 수준을 넘어서는 수준이었고, 그래서 다른 동네의 문학의 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음악 좀 한다는 친구들은 교회 찬양팀에 있었고, 교회성극의 수준은 오랜 연습이 필요한 정도의 수준높은 것이었다.
90년대 문화를 이끌어갔던 이들의 배경에서 교회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교회 자체의 문화도 꽤 수준있게 성장해 갔다.
가스펠에서 시작하여 CCM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자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못지 않게 찬양팀을 중심으로 한 워십문화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찬양팀 리더 오빠는 누구보다도 영향력이 있는 존재였다.
이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한때 교회는 문화를 선도했었고 교회문화라는 특정한 공간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연애당 노릇을 하기도 했고, 딴따라들이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지점에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모여드는 거점이 되었다.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교회는 더이상 문화를 선도하는 공간이 아니다.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세상이 변해갔고, 이제는 굳이 교회라는 공간을 통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놀기 좋은 곳은 교회가 아니라 그 바깥이다.
교회는 오히려 고리타분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더이상 놀라운 것이 교회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교회에 존재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물과도 같다.
이제 교회의 주류문화는 다음 세대의 것과는 상관없는 노년층에 가까운 문화이다.
이는 교회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보여주며, 앞으로 어떠한 운명을 맞게 될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가 문화적 선구자의 역할을 할 때에는 그 다음의 변화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 하는 것이 꽤 중요한 관심사였다.
왜냐하면 그 다음의 변화로 교회문화를 중심으로 한 대중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 자체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 문화는 오히려 블록화되어가고 있어서, 그 안에서 도태되어 가고 있는 모양새다.
기독교서적과 기독교음악은 그 운명을 맞이해가고 있다.
지금껏 교회는 부자행세를 해왔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풍성한 신화적 세계로 무장하고 선구적 문화도 갖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성공하는 시대도 아니요, 문화적으로도 뒤쳐저 있는 집단이 된 교회는 더이상 부자행세를 하기 어렵다.
실제로 돈이 많은 대형교회, 건물과 편의성으로 어필할 수 있는 교회 몇몇은 아직도 특정한 세대에게 부자노릇을 할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 가난함이 금세 드러나게 될 것이다.
교회는 더이상 부자행세를 할 수 없다.
그 실체적 진실을 빨리 마주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교회가 진정으로 가진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은과 금은 원래 교회의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원래 예수로 인해서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함을 할 때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가진 것으로 과시하는 것은 본래적 교회라기 보다는 콘스탄틴 이후의 힘을 과시하는 기독교의 특성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의 시대는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을 받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교회는 가진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교회인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우리가 줄 수 있는 부유함에 근거한 것이 아닌, 없는 중에도 보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받는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을 우리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세련된 문화의 어필이 아닌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라는 책을 쓴 한겨레의 조현기자는 다르게 살기로 한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의미있게 다르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왜 기독교가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전해들은 이야기다.
세상이 교회에 소망을 찾기 어렵다고 이야기하지만, 세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을 보존하고 있는 곳 또한 교회임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우리가 실체적 교회를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말의 세상을 하나님은 원래 그렇게 디자인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무시받을수록 더 중요하다는 역설을 우리는 인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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