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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삶 그루터기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어제는 모처럼만에 주일 오후에 우리 가족만이 하우스에 남게 되었다. 

시험공부를 하러, 동명교회를 섬기러, 일이 있어서들 빨리 자리를 떴다. 

오랜만에 주일오후에 낮잠을 잔 후, 가족들과 함께 동네 뒷산을 올랐다. 


동네 뒷산을 처음 오르던 날이 기억난다. 

그럴듯한 층계로 시작하는 등산길은 작은 절을 만난 후, 급격히 좁아진다. 

과연 이곳이 길이 맞을까 하는 작은 의심이 지나간다. 

그 의심은 넓은 길을 만나기까지 계속된다. 


다시 넓은 길을 만나면 안심이 찾아든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었구나. 이대로 가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선대를 거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름 지름길로 들어섰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걸어보지 않았던 길이었다. 

그 길은 조선대의 후미진 벽과 허름한 원룸들이 만나는 곳이었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그리고 걷고 싶지 않은, 그리고 남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루터기 하우스로 걸어가는 길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구나.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생각했던 그 길이 그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순간적인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내가 길이라고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던 길인데 잠이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싸해지는 느낌. 

어디에서부터인가 옥죄는 듯한 그런 느낌. 

나는 그런 느낌과 싸우고 있다. 



시우의 돌잔치를 마친 후의 기도회였을 것이다.

지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참 좋을 때도 있는데, 우라지게 힘들 때도 있노라고 나누었다. 

박대영 목사님은 공동체로 사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해주셨는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인생에서 후퇴를 경험하면서도 마음을 지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전진이 있는 것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전진이 아닌 후퇴를 경험하게 될 때, 작은 것도 크게 보이며,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지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로마서 5장을 묵상하는 중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 땅에서 품어야 할 진정한 소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간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소망있는 삶이다. 





잠시 길을 잃은 것 같다는 느낌과 싸워야 했다. 

다음에 이런 개활지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그럼에도 내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내게 소망주시는 분이 보여주시는 것 때문이다. 


어제 작은 등반 중에 건우가 자꾸 내게 물었다. 

"아빠 다 왔어요?"

나는 조금만 가면 뛰어놀 수 있는 곳이 있노라고 대답했다. 

아들은 내 말을 믿고 내 앞을 달려갔다. 

나의 말을 믿고...


그래. 그거면 된다. 

길을 걷고 있기만 하면 된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길이 다음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잠시 좁아보이는 길이 주는 위협이 있을 수 있지만,  뚜벅뚜벅 걷자.

이건 나에게도, 그런 소로를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하고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