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 못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그닥 새로운 것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새로이 시작한 이 생활에도 놀랍게도 매너리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해가고 있다.
생활이 굳어지기 시작하고 나름대로 패턴화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삶 자체 안에 갇혀버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건우를 깨워서 밥을 먹여보낸 후에 나도 천천히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1층 식구들과 아침을 함께 먹기도 하고, 힘이 드는 날이면 자율적으로 식사하라고 내버려 둔다.
아, 1층에는 이제 자매들도 들어왔다.
형제와 자매를 함께 두면서 내가 조금 긴장했다.
물론 1층 지체들끼리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긴장감이 서로에게 득이 될 것 같다. 현재까지는...
식사 후에는 잠시 마당을 돌아본다.
열매가 사고를 치지는 않았는지를 먼저 살핀다.
뭔가를 물어뜯지 않았는지, 나무를 물어 부러뜨리거나 땅을 파헤치지는 않았는지를 본다.
이때 열매는 거의 점호받는 자세로 긴장한다.
마당을 정리하는 일을 대략 마치면 열매의 배설물을 치우고 사료를 준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커피를 내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의 일과는 집안 일과 아이를 보는 시간이 대다수이다.
틈틈이 시우를 업고 책을 보기도 하고 모두가 쉬는 시간에 혼자 공부를 할 시간이 주어지기는 한다.
최근에는 시우가 다락방까지 열심히 기어올라와 놀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시우를 피해 1층 구석에서 숨어서 공부한다.
그럴라치면 30분에 한번씩 건우가 아빠를 찾아 내려온다.
물론 부록인 은우도 함께 온다.
넓은 1층에 온 기념으로 둘은 한바탕 뛰어 놀다가 올라가서 또 30분만에 내려와서 언제까지 그 짓(?)을 할 것인지 물어본다.
삼식이.
하루 세 끼를 아내에게 위탁한다.
물론 아내의 요리가 많이 늘었다.
많이 맛있어졌다. 인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설거지 거리는 많다.
조금 긴장을 늦추면 어느새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다.
세 아이는 오토매틱으로 집안을 어지른다.
건우는 여기저기 책을 던져놓고, 은우는 여기저기 가위질을 해대고, 시우는 손에 닿는 것은 다 끄집어 내린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이 정말... 집안일이다.
그 와중에 손님을 만나고, 거의 매일 양육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
여의치 않을 때는 시우를 업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밤 11시.
아이들을 모두 씻기고 기도하고 재우고 나면 나의 시간이 펼쳐진다.
그때의 기도시간과 책읽는 시간, 글쓰는 시간이 내게는 달콤하다.
큰 사건이 없으면 매일이 이렇게 흘러간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 메스업 되었다는 것이다.
집안에서의 삶과 바깥일을 하는 것이 분명한 경계가 있던 시절에는 도피처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다.
이것이 내게는 일종의 답답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내게 일상의 영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하나인 삶 가운데서 나는 집안일도 하며, 공동체의 삶도 살며, 사역도 하며, 공부도 한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마인드여야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틈틈이 내가 그리고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바를 구상한다.
막상 판을 벌이고 보니 거창한 듯 하나 거창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삶의 문제이며, 삶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더 본질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조금씩 짬을 내어 2016년을 준비하며, 본질적 삶의 문제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고민한다.
매일 하나의 삶을 살며 조금씩 나아가자.
이것이 내가 매일을 살아가는 태도이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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