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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기

[영화] 내부자들 - 씁쓸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

나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했다. 

혼자 좀 걷고 생각하고 영화도 보고 싶었다.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 홀로 충장로를 거닐며 영화도 보고 책구경도 하다가 돌아왔다. 

무엇인가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를 보고 더 우울해졌다. 

가려진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 '내부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윤태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아직 미완인 이 웹툰을 영화가 마무리했다. 

윤태호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데에 가히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원작자의 힘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의 주요한 이 세 캐릭터는 정말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연기는 단연 이병헌이다. 

정치깡패의 역할을 하다가 뒤통수를 맞고 손 하나를 잃은 후 그는 절치부심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악으로 깡으로 복수하기에는 너무도 큰 조직을 건드렸다. 

점점 싸움은 커져가고 그 과정에서 성공지향적이지만 나름 정의를 생각하는 검사인 조승우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이병헌과 조승우는 전형적인 선한 주인공들은 아니다.

약간 경계선을 오고가는 듯한 그래서 더 우리와 비슷해 보이는 점들이 있는 캐릭터이다. 

윤태호의 캐릭터들은 다소 그러한 면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끝마친 '파인'이라는 웹툰에서도 분명 악인들을 그리고있는데, 이들이 지나치게 성실하고 진정성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 몰입도가 더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내부자들을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최근의 이러한 소재의 영화들이 계속되는 것 같다. 

'베테랑'이나 '성난 변호사'에서 이래저래 다룬 주제나 방식들이다. 

성난 변호사들의 후반부와 내부자들의 후반부는 더욱 그 유사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시대에 계속 이러한 소재의 영화들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불공평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기존에 있었던 사건들을 재현하는 듯한 내용이 들어있어, 실제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 같은 착각을 던져준다. 

네이버에 이 영화를 검색해보니 가장 핫한 주제는 내부자들의 성접대 장면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인지, 정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다. 

아마도 이러한 성접대 장면에 충격을 받은 이들의 반응일 것이다. 

가만히 그 답변들을 보면 '당신들이 몰라서 그렇지 더하면 더할 것이다'라는 답변이 주를 이룬다. 


뜬금없이 터졌던 별장의 성접대 동영상이나 장자연 사건 등은 이러한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지금 통계는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들었던 어떤 통계는 가임 여성은 1/10이 유흥업소와 유사유흥업소에 종사한다는 그런 놀라운 이야기였다. 

우리의 사회는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음습한 사회다. 



이러한 세상에 대한 대안을 영화는 내부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설정한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내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이다. 


정치깡패에 불과했던 이병헌의 사투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그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은 더 깊은 내부자가 될 때에 그리고 그가 여전히 자기 본질을 지키고 있을 때에 해결가능한 것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의 현실성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고 본다. 



조승우와 이병헌의 케미가 빛을 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과연 권력의 내부자에까지 이른 이들이 그 이권을 박차고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의 10여년간의 민주주의의 퇴행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참 많이 비겁해졌다는 것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기능을 가진 조직들도 작은 이득을 위해서 자신의 소명을 저버린다. 

내부고발자들이 보호받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모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성난 변호사에서도 내부자들에서도 내부고발자 역할을 한 이들은 권력의 중심부에서 배제된다. 


실제로 천안함에 대한 지속적 의문을 제기한 신상철 씨가 최근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천안함 사건 이후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던 그는 결국 징역형을 받았다. 

우리의 실제 현실은 그와 같다. 


그러한 현실 가운데서도 줏대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다른 컨텐츠가 필요하다. 

모두가 권력지향적이며 물질지향적인 세상에서 다르게 사는 것은 한 끗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그 다른 한 끗에 소망을 걸어야 하는 게 맞다. 



실제의 우리의 삶에는 백윤식과 같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철저히 권력지향적이며, 자신의 이득에 의해서 관계도 쉽게 저버릴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백윤식의 존재는 영화 내내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밉상캐릭터의 지존이라 할 만 하다. 

그의 존재는 보수권력의 몇몇 논객을 떠올리게 하며, 정말 저렇게 살아갈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도 가장 싫은 캐릭터는 조상무인가 하는 저 인간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실톱으로 여기저기를 자르는 인간상을 보여주며, 제대로된 인간백정을 보여준다. 

인텔리한 느낌으로 그러한 짓을 저지르니 더 싫어 보인다. 



연말에는 감독판이 나온단다. 

3시간의 러닝타임으로. 

그래도 DVD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3시간 50분 분량의 풀영상이 더 기대된다. 


최근 나온 사회고발물의 최고봉. 

이 영화는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