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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왜 공동체 교회인가



내 나이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사역이라는 것을 했다.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5년. 그리고 지역교회 청년부 사역 7년 그리고 1년의 교구사역

돌아보니 13년이나 사역의 현장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역을 경험하면서 여전한 갈증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역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은 '좋은 공동체'였다. 

폴 스티븐스가 문제제기했던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사역자의 가부장적 역할의 문제가 심각했던 때인지라 (지금도 여전히 심각하지만)

나는 평신도의 입장에서 내가 느끼는 이 문제점을 그대로 교회현장에 풀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역자가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신대원이라는 곳에 가서도 나는 마치 프락치가 오지못할 곳에 온 것처럼 행동하며 생각하며 살았다. 


선교단체에서의 사역의 경험은 교회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보다 원형적인 공동체의 맛을 보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며 목적중심의 공동체일 뿐이다.

교회에 가서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는 교회조직의 한계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지방도시의 대형교회의 청년부 목사를 하고 있다. 

나름 자유롭고 나의 소신을 펼칠 수 있는 자리이지만, 건물에 갇힌 교회의 한계를 여전히 극복못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의 평일의 삶을 알지 못하고 터치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교회 안에 판을 깔아놓고 이곳에 그들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삶을 구속하는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들에게로 가야한다. 

삶과 신앙이 보다 융합되는 새로운 모델을 잡아야 한다. 


나는 이 새로운 모델이 공동체 교회의 모델이라고 본다

깨어져가기만 하는 공동체, 함께 하는 것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본다. 

더욱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근본적인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함께 살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한 건물에서 함께 살기. 그리고 한 마을에서 함께 살기. 

함께 살기에서부터 그 다음이 시작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우리가 하나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되기를 힘쓰는 길에 그 다음의 길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