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는 정신이 가지는 기본 기제이며, 무의식적인 것은 늘 의식에 투사된다는 사실에서 나온 전략이다.
융은 "투사가 일어나는 일반적인 심리학적 이유는 무의식이 언제난 자신을 표현할 방식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무서운 외부세계와 미지의 강렬한 내면세계를 만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부모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하곤 한다.
그리고 부모를 떠나면 지식과 권력을 사회제도와 권위자, 그리고 사회화된 역할에 투사한다.
거물이 되려면 거물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결혼은 그 무엇보다도 많은 무의식의 짐이 얹혀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하는 부부는 자신들이 얼마나 결혼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지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혼생활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대부분 이러한 기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다보면 투사는 자동으로 벗겨진다.
내가 마음을 열고 맞아들인 사람도 알고보면 결국 나처럼 두려움과 욕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게 그랬듯 자신의 무거운 기대를 내게 투사하는 나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조용한 희망과 매일의 현실 사이에 생겨나는 불일치는 중간항로 동안 크나큰 아픔을 일으킨다.
부모의 역할도 우리가 강력하게 정체성을 투사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살지 못한 삶을 자식에게 투사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융은 아이가 짊어져야 하는 가장 큰 짐이 부모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라고 말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길, 자신의 삶을 충족시켜 주고 자신의 상황을 더 낫게 만들어주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는 사실이다.
중간항로가 올 때쯤 자식은 사춘기를 겪고 있을 수 있고, 자신을 향한 투사를 직감하며 반항하는 자녀들과 더 깊은 마찰을 빚고 있을 수 있다.
결혼이나 부모가 되는 일과 마찬가지로 경력은 자신을 투사하는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투사의 결과물이 보잘것 없다는 생각이 들고, 투사의 결과물들로 인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삶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이 불만족스러운데도 이를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중간항로에 들어서게 된다.
중간항로에 들어섰는데 보이는 것이 없고,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울해지거나 희망과 야망이 사그러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상태에 이른 배우자와 함께 지내며 그 분노와 우울을 감당해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부모를 잃는 경험을 하는 이들이 있다.
부모의 상징적 존재로서의 의미는 여전히 우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패막이이다.
그런데 그 부모가 사라지면서 중간항로를 경험하는 이들은 외로움과 버림받은 느낌을 받게 된다.
외부세계가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버려야 나의 존재 안에서 머무르고 생각하게 된다.
두려움에 가득 차 어른들이 구해주기를 바라는 내면아이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투사의 결과로 나타난 내용물을 인신하고 깨달음으로써 유년기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는 거대한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젊음이 지배적일 때는 미래의 장밋빛 기대에 기대곤 한다.
지금의 현실의 부족한 면은 미래의 배우자와 내가 이루어낼 일이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 오늘을 견뎌낸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본 인생의 실제는 젊은 날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그 현실인식 가운데서 살아가는 삶은 성인의 시간이다.
거짓을 조장하는 매체들을 주의해야 한다.
여전히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기만 하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청춘인 것 처럼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포장된 이야기다.
그러한 이야기에 자기를 여전히 내맡겨서 다음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유예하며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은 매트릭스 바깥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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