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을
당신 앞에서 걷게 하신 하나님.
제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나님.
온갖 해악에서 저를 구해 주신 하나님의 천사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
저의 이름이 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메아리치게 하시고
저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도 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살아있게 하소서.
이 아이들이 자라서
그들의 자손이 이 땅을 덮게 하소서.
(14-16)
이스라엘은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약속하신 것처럼 다시 요셉을 만났고 그에 더해 요셉의 두 아들까지도 만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요셉의 두 아들들을 자신의 양자로 삼고 그들을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그리고 두 아이를 실제적 장자로 취급하며 땅까지 수여한다.
위의 기도문은 이 아이들을 향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이스라엘의 기도이다.
어제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기도를 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왜 기도를 하지 않고 먹느냐고 이야기를 하니 서로 탓하기 바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좀 고민스러워졌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삶이 그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전달되는 삶을 사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위의 기도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조상과 자신에게 목자가 되어주신 하나님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도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름이 삶 속에서 메아리치고 삶 속에서 살아있는 삶.
이는 그저 이름이 살아남는 삶이 아니라 그 삶에 대한 존중과 가치인식이 함께 하는 삶일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 온다.
이 아이들은 대체 어떠한 시대를 살아가게 될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건전한 인간관계가 무너져 가는 것 같고, 이들이 정서적 기반으로 삼을만한 교회들도 무너져 가기만 한다.
가정 이외에는 이렇다할 사회적 기능을 하는 곳이 없어 보인다.
이들이 가정을 떠나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때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요즘 같아서는 그냥 평생 아이들과 같이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복은 보고 배울 삶이 있는 것이다.
전 세대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삶의 교훈은 그들에게 남아있게 된다.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될지, 그리고 나의 삶은 어떠한 모습으로 전달될지를 더욱 고민하여 살아야겠다.
기도
다음 세대들에게 좋은 세상이 열릴 수 있기를
감사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역사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감사
'말씀으로 묵상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50장 (0) | 2020.12.07 |
---|---|
창세기 49장 (0) | 2020.12.04 |
창세기 47장 묵상 (0) | 2020.12.02 |
창세기 46장 묵상 (0) | 2020.11.30 |
창세기 45장 묵상 (0) | 2020.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