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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묵상하기

창세기 49장

야곱이 아들들에게 지시했다. "이제 나는 조상 곁으로 간다.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내 조상과 함께 묻어다오.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다. 그 밭은 아브라함이 묘지로 쓰려고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사 두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가 그곳에 묻혀 있고, 이삭과 그분의 아내 리브가도 그곳에 묻혀 있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그 밭과 동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지시하고 나서, 발을 침상 위로 올려 마지막 숨을 거두고, 조상 곁으로 돌아갔다. (29-32)

 

야곱이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아들들에게 축복을 전했다. 

이게 축복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생의 마지막에 어떤 아들에게는 모진 소리를 하고 있다. 

그것을 알아듣는 아들에게는 복이 있다는 것일까. 

 

오늘 본문을 보면서는 생을 마감하는 야곱에게 더욱 눈이 간다. 

아마도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요즘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코로나가 주는 마음의 어려움은 생의 후반부의 목표의식을 앗아가는 것으로 인한 것 같다. 

남은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강력한 목표의식이 추동해 가던 삶의 감각을 상실해 가고 있다. 

물론 이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동체의 3년차부터 생겨난 마음의 어려움이 코로나로 인해서 직격을 맞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보였던 열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어제는 전부터 알던 코칭사역을 하는 대표님의 연락을 받았다. 

줌으로 새로운 사역을 하는데 동참하면 좋겠다는 연락이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요즘은 누군가에게 직접 전화가 오면 심장이 덜렁거리곤 한다. 

통화를 하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 

며칠 전 아내가 넷플릭스로 '더 콜'인가 하는 영화를 밤늦게 보았다. 

작은 소리를 켜놓고 보고 있었는데 잠들던 나는 영화에서 들리는 전화벨 소리에 연신 잠을 깼다. 

전화소리가 내게 그토록 자극적인가 보다. 

아마도 영화는 그러한 현대인의 공포심을 자극하려고 작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 대표님은 내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한껏 괜찮은 척 하려고 했는데, 아마도 이전과는 목소리 톤이 좀 바뀌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요즘 힘을 내기가 힘든 것 같다. 

몇 주 전, 아카데미 운영위원들을 만나 괜찮은 척 힘을 내다가, 돌아와서 하루 종일 앓았다.

없는 에너지를 보이려고 노력하다가 그랬던 것 같다. 

 

생의 의지와 힘을 잃어가는 나는 지속되는 삶 보다는 죽음이 친숙해지는 경험을 한다. 

모든 삶을 마치고 편안하게 발을 침상 위에 두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야곱.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생을 마감짓는 야곱이 부러워졌다. 

 

삶은 무엇때문에 지속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삶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내가 이 땅에서 호흡하며 생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과 고민에 그럴싸한 결론이 나타나면 좋겠다.

 

기도

삶의 이유와 소명의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삶의 적극성을 회복하도록

 

감사

김미경의 리부트를 읽으며 조금씩 자극을 받고 있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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