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새로 함께 하게 된 개인 그루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몸은 피곤하고 할 일도 많지만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마음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며 반드시 개를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에 키우던 개에 대한 추억이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여러 똥개들도 키워보았고 진돗개도 한번인가 키워 보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개는 복순이라는 암캐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새로운 주택으로 이사가면서 키운 개입니다.
적어도 2-3년은 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공부하느라 바빠지면서 개를 잘 돌봐주지 못했고, 개는 목장으로인가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방황하던 힘든 시기에 함께 있던 개입니다.
그저 하릴없이 옥상에 가서 앉아서 나만의 생각을 하고있을 때 가만히 와서 제 옆에 앉아서 꼬리를 흔들어주던 개였습니다.
지금도 복순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했는데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개도 자신의 삶을 누리게 되는 회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이 시점에 개도 합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품종 좋은 개를 사려고 했습니다.
돈을 들겠지만 공동체와 함께 커가는 기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온순함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개.
그런 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형견을 파는 프리미엄 가게도 다 알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동물영화제에선가 유기견에 대한 동영상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유기견들의 아픔을 보게 되면서 피조물의 신음하는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버림받는 개 하나를 데리고 와서 책임지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겠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기견 사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구한 개들의 사연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시궁창에 버려지는 개들.
키우다가 주인들이 견딜 수 없어 쪽지와 함께 역에 버려지는 개들.
이도저도 아닌 채 유리하다가 보호소에 갇히는 개들.
이러한 개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유기견 사이트에서 강아지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품종좋은 강아지들은 오르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립니다.
오기가 생겨서 그런 강아지를 득템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우리마저 그러한 경쟁을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대형견을 데려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그런 게시물이 떴습니다.
집안에서 키우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블랙 을 더이상 키울 수 없어서 분양한다는 게시물이었습니다.
오후에 마침 시간이 있어서 바로 움직였습니다.
저 멀리 경주에까지 가서 1년 4개월 된 커다란 리트리버 종을 데리고 왔습니다.
막상 실물을 보면서 헉 했습니다.
1년 4개월 지나면 저 정도로 커지는구나.
힘이 장난이 아닙니다. 제가 개줄에 끌려갈 판입니다.
그리고 붙임성이 장난이 아닙니다.
언제 보았다고 보자마자 앞발을 들어올립니다. (전 앞발 들어올리는 개는 힘들어 합니다.)
문제는 데리고 온 이후에 더 커졌습니다.
밥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산책은 시켜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힘좋은 이녀석은 이것저것 망가뜨리며 다닙니다.
밤에는 낑낑대며 웁니다.
그 낑낑대는 소리를 들으며 정말 처음으로 후회했습니다.
다시 데려다 놓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다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게 여기저기에서 전해왔습니다.
그 모든 부담감을 제게 지우는 이 상황이 정말 싫었습니다.
특히 저만 나타나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저만을 바라보는 그루가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마치 누가 나를 짝사랑하는지를 아는데 무척 부담스러운 그런 상황... 비슷했습니다.
다음은 우리 주보에 실은 그루에 대한 묵상입니다.
공동체 묵상 – 그루 이야기
그루를 데리러 멀리 경주까지 다녀왔습니다. 공동체에 순하고 붙임성 좋은 개를 가져다 놓으면 모든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개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하루하루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그루가 우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불금의 밤을 지낸 피곤한 날 아침입니다. 그럼에도 그루의 울부짖음은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이럴려면 왜 데려왔어?’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하루 내내 그루의 그 울부짖음이 싫어서 회피했습니다. ‘나만 책임지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도 좀 좋아해줘.’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루는 저만 보면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작은 책임에서부터 나에게 과다하다고 느껴지는 책임까지... 저도 요즘 그 책임의 무게에 눌려서 어떨 때는 훌쩍 나 혼자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회피하지 않고 책임져 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가부장이 늘어나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이 책임져가야 합니다. 책임을 나누고 메꾸어 가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을 살펴 보세요. 책임의 무게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 공동체입니다.
그루를 통해서 제 한계를 느끼고 공동체의 필요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책임지는 것의 과부하를 이 체력좋은 개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이 개로부터 내가 자유해지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에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 녀석이 개목줄을 풀고 사라져 버린 겁니다.
예배 중에 아이들에게 그루를 보러갈 수 있는 그루찬스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루가 없다는 겁니다.
예배를 마치고 동네를 싸돌아 다녔습니다. 없습니다.
마음이 복잡합니다.
그루가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이대로 사라지면 내가 홀가분하겠다는 생각도 스물 올라옵니다.
그루가 사라진 것 때문에 상심한 건우를 보면서 찾아야 겠구나 다시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오후 공동체 교제시간에도 불안한 마음. 그리고 부부모임 시간에도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6시경 커다란 그루 녀석이 불쑥 집 마당으로 들어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한바퀴 돕니다.
비현실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건우에게 "건우야 그루 왔다!" 소리지르고 그루를 맞이했습니다.
앞발을 들며 달려드는 녀석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안아주었습니다.
그래 앞발 들어라. 지금은 감동이다.
며칠 되지 않은 집인데 그래도 집이라고 찾아왔습니다.
그루를 며칠 더 키우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변은 어떻게 보는지, 산책하면서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암캐를 보면 얼마나 이성을 잃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암캐를 보고 필사적으로 목줄을 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알면서 사랑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를 훈련시키는 방법과 개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책도 구매했습니다.
전혀 이질적인 커다란 검은 개가 들어와서 저를 이렇게 고민시킬 줄 몰랐습니다.
이 커다란 개를 책임져가는 것이 이질적 존재를 책임져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탈북자와 함께 하는 것도,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것도 이런 어려운 사랑이겠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루를 통해서 알아가게 될 것들이 기대됩니다.
아래 사진은 하루종일 돌아다닌 그루가 다음날 뻗어있는 모습입니다.
꽤나 만족스러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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