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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만인제사장이 적용이 되는 교회



만인제사장은 마틴 루터의 저작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개혁사상을 확산하는 가운데 독일의 평민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받았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루터의 이야기처럼 원래의 교회는 계급구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의 계급구조가 교회에서는 타파되는 것이 성경적인 교회의 구조다. 

이러한 사회계급의 타파는 초대교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고, 성경적 교회가 적용되는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중세의 삼중직 구조는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목사 장로 제도도 애매한 계급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에서 누군가는 갑질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와 원래 어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볼성 사나워지곤 한다. 

어떤 목사는 성도들에게 갑질을 하고 싶어한다. 지나친 권위주의로 나타난다. 

어떤 장로는 자기의 권위를 분명하게 세워주기를 바라다가 오바하기 시작한다. 

맞춰주기가 힘들어진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드러냄에 있어서 자유로워야 한다. 

누가 갑인지를 살피며 그에 맞추는 것은 교회답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될수 있으면 최대한 비권위적인 구조여야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비권위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비권위적이라고 하는 것은 남이 나의 위치나 자리를 의식하하여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는 너와 다르다는 의식을 주는 행동과 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제스쳐를 취하는 순간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어그러진다. 


그래서 나는 공동체 교회에서는 직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가족과 같은 공동체에서는 집사 장로와 같은 호칭은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킨다. 

그 사람의 이름이면 족하다. 

10년 이내의 나이 차이면 형 오빠 동생 하면 된다.

10년이 지나는 나이 차이면 삼촌 이모 하면 된다. 

그게 맞다고 본다. 


그럼에도 공동체에 질서는 필요하다. 

질서는 좀 다른 문제이다. 

아무런 체계가 없이 공동체게 지속될 수는 없다. 

회중교회의 약점은 평등을 강조하다가 질서마저도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을 시작해야 하고, 누군가는 가르쳐야 하고, 누군가는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세워지는 사람이 철저하게 검증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동체의 질서를 잡아가는 사람의 역할을 기꺼이 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철저히 비권위적이며 역할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다시 누군가를 세워야 한다면 철저하게 검증을 거쳐서 공동체가 공증하여 세우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만인제사장이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