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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직서 양식을 찾아서 다운받았습니다. 

4년 7개월의 사역의 무게에 비해 사직서를 쓰는 것은 꽤나 가벼운 작업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당회에 어떠한 사역을 하기를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으라고 하십니다. 

나름 성의껏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나 봅니다. 

나름 당회에서 이것이 교회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답니다. 

본의 아니게 동명교회 당회에 교회론에 대한 논쟁을 유발시켰습니다. 

결론은 두고보자 였답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친한 목사님이 당회의 분위기를 전하며 그랬습니다. 

십자가 하나만 달라고. 그러면 이런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고...

개척교회가 보기에는 솔깃할만한 액수였습니다.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십자가를 싫어하겠습니까만은 그런 식으로 타협하기 시작하면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 보기에 상식의 선에 머무르게 되면 여전히 저는 또하나의 감시자를 허락하는 것이 됩니다.


저 스스로에게 내가 무엇을 하려고 이 일을 시작하는지를 자꾸 묻게 됩니다.

가끔은 저의 자격지심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네가 뭐 그리 잘났어 하는 음성입니다. 

집에 대한 여러가지 선택을 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거나, 집짓기 잡지를 살펴보면서  '내가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건가. 예쁜 집을 짓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부목사로 살아간 삶이 8년 정도 됩니다. 

그 전에는 IVF간사로 5년 정도 사역했습니다. 

특히 부목사로 살아갔던 시절에는 일종의 갈증이 있었습니다. 

더 본질적으로 살고 싶다는 그러한 갈증이었습니다. 

간사로 살아갈 때는 참 없이 살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남이 뭐래도 나는 정말 가치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들끼리 만나면 강한 동지애도 느꼈습니다. 

간사를 할 때에 느끼는 안타까움은 그저 더 오랜시간 이들과 함께 하고 싶고 더 깊이 실천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목사를 하면서, 특히 교회 청년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계속적으로 부딪히는 현실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본질을 이야기하고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 왔습니다. 


현실에 하나 둘 씩 부딪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일종의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빨리 이 삶을 접을 것인가. 

머리로는 빨리 접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삶의 조건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이해해주어야 했고, 경제적으로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압박이 전해져 왔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저는 어정쩡한 선택, 즉 맞추어줄 부분은 맞추어주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양진일 목사님은 자주 목사들이 자신의 생업의 문제를 내려놓지 못하면 목사 노릇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에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척하려고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이들이 용기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용기인 즉슨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많은 부목사들은 저처럼 어정쩡한 선택을 하거나 더 나아가 변질이 되어 버리곤 합니다. 

물론 소신껏 살아가는 부목사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제 영혼이 서서히 말라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청년부가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적어도 청년부에서는 나처럼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다른 데서는 설교하면서 잘 흥분하지도 않지만 청년부에서는 흥분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 내가 생각하는 실천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5년째 청년부에서 실천적 과제를 심화해 나가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한계였다고나 할까요. 사실상 청년들이 따라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편적 목회를 하기에는 제 목회는 좀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편적 목회라고 보기에는 (이런 말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제자도를 강조하고 너무 헌신을 강조하고 너무 사회적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편적 목회의 관점에서는 불편한 지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부를 나름 지키기 위해서 교회와 무리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장로님들에게 직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청년부에게 요구하는 것을 여러번 거부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저를 고깝게 여기는 시선들이 생겨났고 그것은 더욱 심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예상된 수순을 밟아가고 있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언제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때는 내가 다음에 하려고 하는 것이 명백하게 스톱될 때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동명교회에 더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때가 왔습니다. 

몇 달에 걸쳐서 제가 시도하는 모든 것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사실 저도 그것까지 이루어지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습니다. 


이 새로운 시작 앞에서 저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 청년부에서 고별설교를 하고 다음날 라브리 공동체에 갑니다.

일주일 정도 거기에 머무르면서 먼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살피려고 합니다. 

알게 모르게 저 스스로 지켜오던 경건의 원칙들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사역의 환경과 가정의 환경을 탓해왔지만 이제는 다시 세워야 겠습니다. 

그리고 내 안의 순수함을 점검하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담겨있는지를 살피며 다시 세우려고 합니다. 

그루터기 공동체의 실천적 과제에 대해서 고민하려고 합니다. 

공동체에 계신 분들과 한국교회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돌아오려고 합니다. 


이제 정말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나의 이 선택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이 밤에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나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