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으로 묵상하기

창세기 44장 묵상

그러니 이 아이 대신에 제가 주인님의 종으로 이곳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이 아이는 형제들과 함께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이 아이가 함께 가지 못하는데, 제가 어떻게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발, 제가 돌아가서 아버지가 슬픔에 잠겨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33-34)

 

돌아가는 형제들을 또다시 시험하는 요셉. 

요셉은 형들이 또다른 자아같은 베냐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을 철저하게 버렸던 형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에 과연 동생을 구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 베냐민을 구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었다. 

 

그같은 상황을 맞이하고서 형들은 좌절했다. 

모두가 당황해 했으며, 요셉에게 최대한 자신들의 사정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나서야만 했다. 

누군가는 자신을 걸고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자기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유다가 해냈다. 

그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기를 원했다.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동생과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어찌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요셉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사실 요셉이 팔려갈 때에도 누군가를 그래야 했다. 

르우벤처럼 상황을 회피하며 요셉을 구할 생각 정도에 그치면 안된다. 

그때의 유다처럼 대안을 제시해서도 안되었다. 

그때 누군가는 형제들을 질책하며 요셉을 구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나서야만 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랬기에 레위와 시므온과 같은 강경파에 밀렸다. 

자신까지 위험해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평화를 구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저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평화를 구하는 일은 자기희생을 동반한다.

평화를 구하는 자기 자신을 내어놓고 평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다는 자신을 내어주어 가족이 평화하기를 바랬다. 

예수는 자신을 내어주어 하나님과 우리가 평화하기를 바랬다. 

이는 평화에 걸맞는 대가이다. 

 

구럼비에서 평화를 외치다가 송강호 대표님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받을 수 있는 법정최고형을 받고 제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평화를 위한 대가를 스스로 치르고 있다. 

 

평화를 위한 대가를 누군가가 치를 때에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진다. 

요셉은 유다가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며 비로소 마음이 녹는다. 

요셉의 시험은 끝났다. 

 

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1632

 

제주 해군기지 문제, 다 끝났다고 할 수 없는 이유

[송강호 옥중 서신] 평화를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께

www.newsnjoy.or.kr

기도

평화를 구하는 자로 살기를

 

감사

건우가 나름 공부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 것에 감사. 

 

'말씀으로 묵상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21:5-19  (0) 2020.11.04
누가복음 20:41-21:4  (0) 2020.11.02
창세기 43장 묵상  (0) 2020.10.27
창세기 42장 묵상  (0) 2020.10.26
창세기 41장 묵상  (0) 2020.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