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 대제사장과 종교 학자들은 예수를 없앨 방도를 찾고 있었으나, 백성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들의 행동을 숨길 방법도 함께 찾고 있었다.
그때에 사탄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 그는 다른 제자들을 떠나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에게 가서, 예수를 넘길 방법을 함께 의논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운이 믿기지 않았고, 그에게 두둑이 보상하기로 약속했다. 유다는 그들과 약속을 하고서, 그때부터 무리의 눈을 피해 예수를 넘길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1-6)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큰 명절이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는 위기로 다가왔다.
인기가 좋아지는 예수는 이 절기동안 전국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쌓아놓은 종교적 위상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 요한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민중을 중심으로 한 종교운동은 이들에게 전혀 달갑지 않았다.
세례 요한이 사라졌듯이 예수도 그러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자연스러워야 했다.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면 안된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기겠다고 찾아왔다.
종교지도자들에게는 행운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음험한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포탈을 보면 열불이 난다.
노골적인 가짜뉴스들이 전면을 채우고 있다.
전에는 은근한 가짜뉴스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다음 포탈에서 조중동 류의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전면전 양상이다.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
죽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
다른 이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방식으로 계속 자신들이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시대에도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위협이 되는 이들을 제거했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영원한 자신들의 나라를 지켜갔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그들의 권력은 한줌이다.
잃어버린 나라의 상황에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작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도 100년 남짓한 시기동안 지속되었을 뿐이다.
지금의 권력자들의 뿌리를 조선의 노론까지 거슬러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200년 정도 되는 시간이다.
그 권력도 끝내는 그 정체를 드러내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권력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으로 이 상황을 보고 싶다.
예수는 단지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을 뿌리뽑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더욱 깊은 것을 보셨다.
사망의 세력에 대한 역전까지도 바라보신다.
그래서 그는 작은 전쟁이 아닌 더욱 깊은 커다란 전쟁을 벌이신다.
더욱 깊이 파내려면 오랜 호흡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거대한 적폐 세력을 제거하려면 그들의 전모가 드러날 때까지 차분하게 상황을 진전시켜야 한다.
섣부르게 행동하다가는 꼬리자르기가 될 수 있다.
그들의 본체를 제거해야 한다.
어디에나 가룟 유다처럼 부화뇌동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오늘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노력하는지를 돌아본다.
나는 진정 예수의 편에 서 있는가.
기도
죽이려는 자들의 시도가 실패하게 되기를
시우가 교정기구에 잘 적응할 수 있기를. 첫날은 많이 힘들어 하고 있네요.
감사
이틀째 채식 중. 그래도 잘 버티는 것 같아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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