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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묵상하기

누가복음 22:14-23

시간이 되자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고 모든 사도가 함께 앉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의 때에 들어가기 전에, 너희와 이 유월절 식사를 함께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희는 모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다함께 먹기까지는 이것이 내가 먹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다." (14-16)

 

예수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아니 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사라는 것을 하고 있다. 

이로써 예수에게 있어서 식사라는 것은 마지막이 아닐까?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다함께 먹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서의 식사는 이것으로 마지막이 될 것이고 그치게 될 것이지만, 다시 만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식사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채식을 시작한 지 3일이 되었다. 

배고픔이 내 안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다. 

밥과 채소를 먹고 배부른 듯 하나 어느 곳에서는 정제 탄수화물과 육류를 간절히 원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의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식사는 어떠한 것일까?

예수는 마치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유월절 식사가 지속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유월절 식사에 등장하는 육류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속되는 것일까?

갑자기 하나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예수의 지상에서의 대부분의 사역은 먹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는 것이 예수의 사역이었다. 

이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가지는 깊은 교제의 측면 때문일 것이다. 

 

함께 먹는 것은 하나가 되어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먹는 것에 담긴 욕망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먹는 것에 다른 사람을 동참시키는 식구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함께 먹고마심이 온전하여 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안전하고 풍성한 먹고마심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반면 이 세상의 먹을 것에는 인간의 욕심의 구조가 깃들어 있다. 

인간이 이처럼 육식을 많이 하는 시대는 없었다. 

인간의 자신이 먹는 것을 지나치게 욕구 중심으로 재편시켜 놓는 바람에 자연에서 존재하는 것은 밋밋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먹을 것은 폭식을 유도하는 욕구구조가 어려있다. 

 

하나님 나라의 식탁은 욕구 중심의 식탁이 아닌 교제와 배려의 식탁이다.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식탁의 근본구조다. 

이것은 영원하게 지속된다. 

벌써 하나님 나라의 식사가 기대된다. 

 

기도

먹을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균형을 갖추어가길

 

감사

고구마를 굽고 있음. 곧 먹을 수 있게 되어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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