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으로 묵상하기

누가복음 22:24-3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다르다. 고난에 대비하여라. 힘든 시기가 닥쳐올테니, 필요한 것을 챙겨라. 너희 겉옷을 전당 잡혀서 칼을 구하여라. '그는 범죄자들과 한 무리로 여겨졌다'고 기록된 성경 말씀의 최종 의미는 나에게서 완성된다. 나에 대해 기록된 모든 것이 이제 결말로 다가가고 있다."

제자들이 말했다. "보십시오. 주님.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하면 됐다. 칼 이야기는 그만하자."

(36-38)

 

예수가 올리브산에서 잡히시기 바로 전 제자들에게 고난을 예고하신다. 

이 고난의 시간동안 제자들은 정체를 숨기고 쫓겨다녀야 했고 군사의 위협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은 이 시기동안 범죄자 취급을 당하게 되었고 겉옷을 챙기기보다는 칼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수가 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채롭다. 

과연 예수는 왜 겉옷을 전당잡아 칼을 구하라고 했을까. 

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이야기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칼을 사용하는 것에는 찬성을 하시는 것 같다. 

예수가 칼 이야기를 하자 제자들은 칼에 꽂혔다. 

그래서 계속 칼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는 칼 이야기를 지속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칼은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것이며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며 즐겨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신다. 

 

살다보면 나도 무기를 휘둘러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을 휘두르지 않으면 나를 전혀 보호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야수들로 가득한 남학교를 다니던 시절, 강한 척을 하면서 나를 보호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나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적이 있었다. 

 

전도사 시절 교역자회의가 있었다. 

담임목사님이 포토샵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했다. 

나는 열심이 가득한 때였는지라 조금 할 수 있노라 대답했다. 

나더라 현수막 도안을 해보라고 하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수석부목사님은 나를 불러내어서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도안을 하고 현수막 업체에 맡겼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내가 원하는 색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RGB와 CMYK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인쇄물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색공간이 달라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교회에서는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현수막 비용을 내가 다시 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수석부목사님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열정이 열정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아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 세상이다. 

초년 전도사 시절 나를 각성시켰던 사건이다. 

 

험악한 시절 야수처럼 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내게도 칼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말처럼 칼에 매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칼은 의지할 것이 못된다. 

그저 잠시 한시적으로 나를 지키는 용도일 뿐이다. 

칼이 필요한 세상이 한스럽다. 

그러나 칼을 준비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안타깝다. 

예수의 심정은 그러한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지체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것을 적절하게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이 또한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세상에서 사는 우리는 그에 대한 보완재를 구비할 필요가 있다. 

 

기도

고난 가운데서 자신을 보호하는 지혜를 가지기를

 

감사

새로운 한주를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음이 감사. 

'말씀으로 묵상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22:54-71  (0) 2020.11.18
누가복음 22:39-53  (0) 2020.11.17
누가복음 22:14-23  (0) 2020.11.11
누가복음 22:1-13  (0) 2020.11.10
누가복음 21:29-38  (0) 202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