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셔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니, 그들이 슬픔에 잠겨 잠들어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무슨 일로 자고 있느냐? 일어나거라.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45-46)
예수께서 거기에 온 사람들, 곧 대제사장과 성전 경비대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위험한 범죄자라도 되는 것처럼 칼과 몽둥이로 내게 덤벼들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지만, 너희는 내게 손 하나 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너희 뜻대로 하여라. 지금은 어두운 밤이요. 어두운 시간이다."
어두움이 시작되었다.
제자들은 어두움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기도하지 않고 잠들어 있다.
예수는 그들이 깨어 있기를 원했다.
깨어 있는 것은 어두움을 대하는 자세이다.
어두움은 부지불식간에 다가온다.
이것은 예수가 이야기한 종말이기도 하다.
마지막 때란 어두움이 도래하는 시기이다.
어두움이 찾아오면 그전에 쌓아온 것으로 대할 수 있을 뿐이다.
어두움이 찾아올 때에는 칼과 몽둥이를 든 이들이 자신의 뜻대로 한다.
어두움이 찾아올 때에는 그저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이 어둡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지금의 이 시대는 어두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어제는 김진명의 바이러스 X 라는 소설을 읽었다.
치명율 100%의 가상의 바이러스를 바이러스 X 라고 한단다.
소설은 조류독감과 광견병 바이러스가 결합된 가상의 바이러스를 상상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점점 인류의 위협이 되고 있다.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소설가는 이를 IT 기술로 해결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소설같은 이야기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가진 위협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두운 시기의 유혹은 무엇일까?
그것은 더이상 소망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위협인 듯 하다.
사람의 머리로는 소망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희망찬 미래의 유토피아 같은 것은 더이상 없는 것 같다.
하루하루 그저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본질인 듯 싶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 기도하며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는 것이 어두운 가운데 살아야 할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지역도 곧 1.5단계 혹은 2단계 상향이 예상된다.
오래 인내하며 깨어 있으며 기도하며 살아야 겠다.
기도
어두움 가운데서 깨어 있는 삶을 살도록
감사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의가 이루어지는 일들이 간간이 일어나는 것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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