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말했다. "이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바로 그때 베드로가 마지막 말을 끝마치기 전에 수탉이 울었다. 그때에 주님께서 고개를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하염없이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60-62)
어두움이 임했다.
그 어두움은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예수는 잡혀가고 제자들은 흩어졌다.
위험한 상황이 되었고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베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서 가만히 잡힌 예수를 따라간다.
그러나 잡힌 예수와 같은 운명이 되고 싶지는 않다.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자신있게 외치던 때의 베드로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예수를 모른다고 했다.
그때 예수를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예수의 제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와야 했다.
그는 극도의 위험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때 예수는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는 베드로가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예수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외로운 길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의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길을 홀로 가야했고 호언장담하는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할 것이었다.
예수의 길은 그때도 지금도 외롭고 그분이 홀로 가야 하는 길이다.
예수를 따르는 길마저 위험해질 때가 있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예수를 따르는 것이 온갖 오해와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 때가 될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성경은 전망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약해진다.
예수를 부인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내가 믿었던 것이 무엇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충성스러웠던 베드로도 그랬다.
고난의 길을 나의 길로 받아들여야만 예수의 길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예수가 고난받는 것이 없었기에 그는 모든 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고 예수를 따를 수 없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의 길을 이해하자 그는 두려움없이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를 따르고 부인하지 않는 길은 힘든 길일 수 있다.
앞으로는 더욱 힘든 길일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그 길을 부인하지 않으며 의리를 지키는 것이 종말적 삶이다.
뺨을 맞는 예수의 자리에 우리도 서야 한다.
기도
예수의 길을 부인하지 않기를
감사
코로나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음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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