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쳐서, 시내와 마을에 그 이야기를 전했다. 사람들이 어찌된 일인지 보려고 나왔다. 그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보니 귀신 들렸던 사내가 단정한 옷차림과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었다. 거룩한 순간이었다. 잠시지만 그들에게 호기심보다 경외심이 앞섰다. 그때, 그 일을 처음부터 목격한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 후에, 거라사 지방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너무 엄청나고 갑작스러운 변화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다시 배를 타고 떠나셨다. (34-37)
한 영혼이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돼지들은 죽었다.
예수는 그것이 온당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돼지들은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다.
한 영혼이 회복되는 거룩한 일과 누군간의 이익이 맞부딪히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잠시 경외심을 느낀다.
자신이 알던 거라사 광인이 얌전해져서 옷을 입고 예수와 대화를 하고 있다.
엄청난 일이 자신들의 앞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직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뿐이다.
그들은 예수가 행한 일이 자신의 통제권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예수가 함께 있으면 그러한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음도 알아챈다.
원래 예수는 개인의 재산권 따위는 존중하지 않는 분이시다.
자신을 따라오려거든 그런 것에 매이지 말라고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런 분이 지나치게 가까이 있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예수는 그곳을 떠난다.
예수가 함께 있는데 떠나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예수를 따르지 않는 세상에서 예수는 내어쫓김을 당한다.
자신의 이익에 취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의사들은 환자와 약한 자를 예수와 함께 내어쫓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말도 안되는 기사를 남발해대는 기자들은 억울한 자들과 함께 예수를 내어쫓는다.
그리고 교회를 지키겠다고 확진자를 만들어내고,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이들은 이웃을 내몰고 예수도 내몬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 갈 곳이 없다.
사람들이 거룩한 순간에 머물기를 원하고, 그것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예수는 거기에 거하신다.
자신의 이익을 쫓아다니지 않고 이웃을 살리기를 원하는 그 마음에 예수는 거하신다.
나는 오늘 예수가 거하시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기도
자기이익 때문에 격해지기만 하는 세상에서 다른 이를 살리려는 정신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감사
오늘 새벽에 천장을 보니 비는 새지 않습니다. 아마도 에어컨 실외기가 원인인 듯. 원인이 잡혀가는 듯 해서 감사.
2차재난지원금의 방식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선한 의지를 가지고 도우려고 하는 정부가 있어서 감사. 가장 예수의 정신을 실현하는 기관인듯. 예수의 정신은 정부에서 찾는 세상이 올 줄이야. 그래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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