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에 취해 있었다. 그들이 깨어 눈을 비비며 보니,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 계시고 그 곁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모세와 엘리야가 떠난 뒤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다. "주님 지금은 중대한 순간입니다! 기념비 셋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는 주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32-33)
예수는 제자들과 기도를 하러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이뤄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것은 예수가 고통을 겪고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시는 일에 대한 것이다.
예수의 마음을 제자들은 공유하지 못했다.
번민 가운데 기도하러 오신 예수와 함께한 제자들은 잠에 취해 있었다.
자신의 길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공유해줄 이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
청춘기록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늦게 군대에 가게 되는 박보검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에 대한 고민을 자신만큼 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과거가 떠올랐다.
나름 선교단체에서 헌신을 하다가 26살에 군대를 가게 되니 마음이 어려웠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인생의 짐이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그 짐을 져야 할 때, 내 헌신의 이유가 되었던 이들은 내 옆에 있지 않고 공감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짐은 내가 지는 거구나.'
쓰라리게 느꼈던 시절이다.
아는 분이 페북에 이번 추석에서부터 경제적 한파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것 같다.
주변에서 힘들어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 마음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그러한 인생의 짐을 나눌 사람은 사실상 없다.
그 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는 이는 사실상 하나님과 하늘의 영역에 있는 이들 밖에는 없는 듯 하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의 짐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주고 있다.
예수는 그 위로를 받기 위해서 산에 오르신다.
그래도 산에 오를 수 있음이 다행이다.
예수는 산에 오르시며 하늘을 경험하시고 다시 힘을 얻고 내려오신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여전히 잠에 취해 있다.
말하는 것도 내실이 없다.
그들은 한치도 예수의 마음에 근접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또한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를 위로하기 위해 왔지만,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 영광스러운 모습에 취한다.
그것은 전혀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지만 그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채로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예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의 관점에 아직 이르지 못한다.
우리가 이땅에 매여있는 한 우리도 그럴 것이다.
생태계의 위기보다는 우리의 어려움이 더 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관점에 매여 고통받으며 우리를 더 묵상한다.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순종하는 길 밖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견디어내며 주의 선하심을 기대할 뿐이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다.
그러나 산에 오르며 하루하루 살아가도록 하자.
기도
오늘 하루도 은혜로 견디어내기를 원합니다.
감사
어제 산에 오르고 걸었더니 밤에 잠을 잘 수 있어서 감사.
몸을 움직여야 번민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되어 감사.
'말씀으로 묵상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9:51-62 묵상 (0) | 2020.09.17 |
---|---|
누가복음 9:37-50 묵상 (0) | 2020.09.16 |
누가복음 9:18-27 묵상 (0) | 2020.09.14 |
누가복음 9:1-19 묵상 (0) | 2020.09.11 |
누가복음 8:40-56 묵상 (0) | 2020.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