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 선교사님의 떠남이라는 책을 읽었다.
몇달 전에 읽던 책인데 오랜만에 다시 주워 읽었다.
몽골에서의 오랜 사역으로 명성도 얻고 안정감도 얻었을만 한데 다시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가운데 네째 아이를 출산하여 키우는 어려움을 나누셨다.
그 정신없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참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아이들만을 키우면서 일종의 자괴감을 느꼈다는 이야기였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러한 시간을 허락하셨던 것일까?
선교사님에게는 그 질문이 중요했다고 한다.
사임을 하고 몇 주 동안 공식적으로는 하는 일이 없다.
생각보다 이것이 주는 압박감이 컸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자리나 위치가 주는 안정감에 의존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사임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주로 시우를 안아주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이 놈의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설거지 거리는 계속 쌓여가고 청소는 열심히 해도 반나절이 지나면 우리 아이들의 활약 때문에 도루묵이 되곤 한다.
게다가 아이들 빨래거리는 왜그리도 많은지, 이 녀석들은 자기 옷을 더럽히는 데에 선수들이다.
게다가 이번 주 건우는 심한 감기에 걸려서 며칠 째 학교를 가지 않고 있다.
온 집안식구가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매끼를 먹으며 서로 부대끼고 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밤이 되면 내게 잠시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건우는 일찍 자는 것이 습관이고, 은우와 시우는 오후 11시 어간이 되면 그때부터 엄마만 찾기 시작한다.
내가 안아주거나 달래주어도 소용이 없으니 용쓰는 척 하다가 "어쩔 수 없네" 한 마디 하고 내 책상에 앉는다.
미소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는 중에 본 책이 이용규 선교사님의 책이었고, 떠남이라는 책은 내게 꽤 감동을 주었다.
선교사님은 네번째 아이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여러모로 묵상하며 기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분이 발견하게 된 것은 아버지와 공동체에 대한 것이었다.
선교사님의 이야기다.
"내가 선교지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사역하면서 바라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내가 공동체를 이끌며 아버지 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울러 나와 함께 사역하는 살마들이 아버지 됨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공동체를 이끄는 것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그러한 아버지를 원하고 있다.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네째 아이를 주신 이유도 더욱 공동체를 섬기기 위함이라고 결론짓는다.
애틀란타에서의 부대낌도 공동체를 섬기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었다고 고백한다.
선교사님의 이 나눔은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 나를 괴롭히는 것의 영적 실체도 결국 아버지됨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하나님은 나를 더 좋은 아버지로 만들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세 아이와 아내를 섬기는 것도 탈북자 청년들을 돕는 것도 그리고 영적 아버지를 잃어버린 청년 세대들을 섬기는 것도 모두 아버지됨과 관련된다.
나의 사명은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닌 자녀들을 세우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며, 그러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이 아버지가 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세상이 그리고 세상을 닮아가는 교회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공동체를 그리고 공동체를 책임지는 아버지를 잃어가고 있다.
다시 영적 아비들이 일어나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내가 잃지 말아야 할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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