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해 속죄하기를 마친 뒤에, 아론은 살아있는 염소를 가져와서 그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부정과 모든 반역과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죄를 그 염소의 머리에 씌워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내보내야 한다. 그 염소가 이스라엘 백성의 온갖 부정을 짊어지고 광야로 나가면,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풀어 주어야 한다. (20-22)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부정과 모든 반역과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내보내지는 염소.
그 염소를 아사셀 염소라고 한다.
광야로 가게 되는 아사셀 염소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염소는 광야에서 홀로 생존하기 어렵다.
아마도 염소는 광야에서 오래지 않아 생을 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의 속죄일에 어떤 생명은 부정과 죄를 모두 짊어지고 생명으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는 부정과 죄악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기 때문이고, 죄의 대가는 피로써만 치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물의 피는 그 생명으로서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고 볼 수도 있겠다.
동물의 피도 생명으로 여기셨기에 인간의 생명의 대가로 여기신 것이다.
우리는 그 피의 무게에 걸맞게 동물들을 대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염소는 광야의 처분에 맡겨진다.
제사장은 염소에게 죄를 전가할 뿐, 그 피를 거두는 것은 광야다.
제사장이 직접 제물을 잡는 방식과는 다르다.
생명을 땅으로 돌려보낸다.
땅이 우리의 죄악과 배역의 대가인 피를 받는다.
이 세상이 우리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최소 69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것도 지나친 과소집계라고 한다.
어쩌면 이 바이러스로 1000만명 정도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죄로 우리의 피를 이 땅에 흘린다.
언제까지 이 일이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죄는 대가가 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죄는 없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우리의 행함에 신중함이 깃들 것 같다.
감사
미세먼지 적은 하루를 주셔서 감사
기도
우리의 죄를 깨닫고 이 땅과 공존하며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