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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묵상하기

말씀낭독, 묵상의 재정의

저는 말씀묵상을 지적인 방식으로 해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방식도 시도해 보았는데, 제게 가장 편했던 방식은 말씀을 천천히 일고 다가오는 구절을 깊이 고민하며 외우는 방식이었습니다. 

말씀을 낭독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한동안 시도도 해보았는데,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김기현 목사님의 책에서 다시 말씀낭독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시고, 조금씩 설득이 되고 있습니다.

 

오랜 전통의 성경읽기 방식은 바로 낭독이었습니다. 

성경에서의 묵상, 시편 1:2에서의 묵상은 낭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묵상이라는 단어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묵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가'라는 단어인데 이는 '중얼거리다' '속삭이다'라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깊이 숙고하다라는 의미의 묵상과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경묵상에는 그럴듯한 사고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성경적 묵상은 그저 읽고 읊조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은 누구나에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훈련이라는 시도는 그 자체로 부담감을 주는 방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듣는 책의 방식으로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게 전수해가고 있습니다. 

 

묵상은 이러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읽는 것입니다.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은 반복해서 읽으라는 것입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되,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읽으면서 반추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묵상은 되풀이해서 읽는 것입니다. 

이에는 천천히 읽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들으려면 속도를 늦추어야 합니다. 

묵상은 천천히 되풀이해서 소리를 내어 읽는 방식입니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 본문을 읽다보면 자신의 생각의 언저리 안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는 행위 자체에 몰두하다보면 책이 우리를 읽고 우리를 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동양에서의 공부 방식이었습니다. 

동양에서의 독서는 낭독이었습니다. 

생각을 하기 위한 낭독이 아니라 낭독이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말씀묵상을 낭독으로 정의하고 접근하는 것은 본래적 우리의 공부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묵상을 낭독으로 규정하고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어느 순간 성경을 읽으면서도 나의 해석 안에서 맴도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이상 해석과 생각이 확장되어가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낭독을 통해서 성경이 나를 읽고 변화시키는 경험을 추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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