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말은 난도질로 상처를 주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상처를 아물게 한다. (18)
며칠 전에 노회 줌모임이 있었다.
아주 간단한 의제였다.
사단법인의 이름을 제출하는데 '대한예수교국제장로교' 가 나은지 '국제장로교'가 나은지에 대한 논의였다.
의견은 거의 반반으로 갈려 있었다.
대한예수교를 붙이자고 주장하는 측은 다른 교단과의 형평성, 그리고 그들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반영하자고 했다.
이단으로 오인받는 것도 조금은 줄여줄 수 있다고 했다.
국제장로교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한예수교에 붙어있는 적절치 못함을 이번에 떨어내자는 의견이었다.
굳이 그 이름을 가져다쓸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해방이후 한국교회의 분열상 속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 위해서 사용한 이름이었다.
나는 국제장로교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사실 대한예수교가 붙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한예수교를 붙이자는 사람들 중에 '성경적' 다른 이들을 향해서 '교만하다' 이런 표현을 쓰자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진 방인성 목사님이 넉넉하게 감싸안는 멘트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말의 지혜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내가 좀더 날카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 상황에 도움이 될리가 없었다.
말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 사람을 안고 가겠다고 생각하는 말과 그 사람을 내치겠다고 생각하는 말은 다르다.
나의 입장을 이야기할 때, 상대를 배제하지 않는지를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부지런한 이들은 일을 하며 자유를 만끽하지만
게으른 자들은 일의 압박을 받는다. (24)
묘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나는 부지런한 자인가 게으른 자인가.
어떨 때에는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자유로움을 느낀다.
일을 하면서 개운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떨 때에는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종의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과거에 나는 부담스러운 일이 있을수록 먼저 했다.
무언가 일찍 하는 습관은 그때 생겨난 것 같다.
시험공부도 며칠 전에 이미 끝내놓고. 반복해서 요약본만 보는 습관을 들였다.
약속시간에 적어도 10분은 일찍 가겠다는 마인드를 가졌다.
마감시한 며칠 전에는 원고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미루는 습관도 기어들어오기 시작한다.
밀린 드라마를 보고 일을 해도 늦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이 많네. 하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막상 일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맑지 않은 정신으로 밀려서 한다.
창의적으로 일을 하기보다는 그저 하던 일을 반복하는 정도의 일이 된다.
요지는 부지런함이 나를 지배할 때와 게으름이 나를 지배할 때의 태도가 다르더라는 것이다.
아마 지혜자는 그러한 점을 지적하는 것 같다.
감사
2021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감사
기도
부지런하게 오늘도 살아갈 수 있기를
'말씀으로 묵상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언 13:14-25 (0) | 2021.01.12 |
---|---|
잠언 13:1-13 (0) | 2021.01.11 |
잠언 12:1-14 (0) | 2021.01.05 |
출애굽기 13장 (0) | 2021.01.04 |
출애굽기 12장 (0) | 2021.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