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비극이 있은지 1년이 되어갑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침 페북에 김병년 목사님도 서울에서 공릉동의 사역자들과 팽목항을 방문한다고 하십니다.
서울에서도 가는데 광주 사는 나도 당연히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번개를 모집해서 제 차로 팽목항을 다녀왔습니다.
김재갑, 최고, 문병주, 모상혁, 고보경 저까지 여섯명이 결코 가깝지 않은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팽목항은 4년 전인가 낙도사역을 하기 위해서 가본적이 있는 곳입니다.
진도의 끝자락까지 차를 몰았지만 항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메어야 했던 외진 곳입니다.
그런데 4년만에 다시 찾은 팽목항은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노란 현수막과 헝겊들의 물결이 팽목항을 뒤덮었습니다.
1년이 지난 세월의 흔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팽목항은 그 사건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노력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 방파제입니다.
전에는 없던 방파제가 생겨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파제에는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각종 현수막과 전시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팽목항을 걸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땅을 밟았습니다.
1년전의 안타까운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은 여전히 1년 후에도 미결된 채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이들. 즉 실종자들의 이름입니다.
죽어버린 육신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을만도 하지만 유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실종자들입니다.
합동분향소에서 이들은 빈칸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함께한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참사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서거차도라는 섬이 나옵니다.
우리 청년들과 저는 그곳 교회에서 작업도 하고 성경학교도 했습니다.
3박4일간 많은 일을 겪었던 곳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 우리는 그 해역을 기억했습니다.
우리가 머물던 바다였습니다.
어렵게 구조된 학생들은 우리가 단체사진을 찍던 바로 그곳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들의 이웃의 사건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안산에서 온 대절버스에서 한 무리가 내려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잊혀질 수 없는 우리들의 이웃들의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월호가 인양되어서 좀더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러한 사회적 비용은 감당할만한 비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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