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날 밤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네가 데려온 여인은 남편이 있는 여인이다." (2,3)
아브라함이 말했다.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서,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내 아내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1)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에 힘을 쓴다.
그러나 정작 아비멜렉은 남편이 있는 여인은 건드리지 않는 왕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사라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아비멜렉도 죄를 짓지 않도록 지키고 계신다.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세상, 그리고 실제의 세상의 모습은 사뭇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실제로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겉으로는 가장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사는 것을 보는 현실이다.
꽤 도덕적이며 이 사회의 공공의료를 지탱한다고 생각했던 의사들의 발언과 생각이 생경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내 기대와 다른지를 보면서 경악하게 되는 요즘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어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은 이들을 보존하고 계신다.
높은 곳이 낮아지고, 특권의식을 가진 자들이 그 한계를 드러낼 때에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보존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보호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두려움에만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세상을 보존하고 계심을 믿으며 그에 근거하여 살아야 함이 옳다.
쉽게 비관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상황을 판단하다가 비관에 빠지기 쉬운 나에게 특히 적용되어야 할 이야기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지켜야 할 우리의 소신이 필요하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감사의 제목
하나님이 하나님의 세상을 지키고 계시는 것이 감사하다.
사람은 계속 무너뜨려 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다.
그 불굴의 사랑이 감사하다.
나같으면 금세 포기하고 말았을 일이다.
그 불굴의 사랑에 근거하여 오늘도 힘을 내어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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