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 아이를 건드리지 마라! 네가 나를 위해 네 아들, 네 사랑하는 아들을 제단에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지 이제 내가 알겠다." (12)
이 사건은 내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드라마로 치자면 아이가 태어나고 모두들 행복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생 클라이막스로 이러한 사건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인간의 행복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아브라함과 이삭은 트라우마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방식을 보여주시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이 두가지 방식은 서로 따로 놀다가도 그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시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그 불가해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것. 그것을 보게 된다.
그분이 그러하시기에 그분은 우리의 예측을 항상 비껴가신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를 향하고자 하시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처럼 혼란한 시대를 보시면서 그분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진행을 생각하고 계실 듯 하다.
그래서 그분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도 나를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어제는 전광훈 씨가 퇴원을 하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 사회의 교회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한국 교회는 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끝까지 대면예배를 하겠다는 교회도 있다.
그들은 당황스러운 것이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이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해내고 싶은데, 지금껏 배워온 것은 그 고난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맡기는 방식이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내어맡기며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순종도 필요하나 그들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끝내 자기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고 저러고들 있다.
이해는 된다.
자신을 내려놓게 되면 막막함의 시간, 무기력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이들에게는 죽음의 시간이다.
그들은 무엇이라도 해야 하며, 싸워야 하고, 쟁취해야 한다.
결국 이 상황은 전처럼 살던 이들의 폐기로 마무리될 듯 하다.
기도제목
9월에는 각종 교단의 총회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한국사회에 교단들이 제대로된 메시지를 내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라 본다. 합동 총회가 가장 주목된다. 전광훈 일파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최대 교파.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적절한 메시지를 내면 좋겠다.
마이삭으로 인해 경남쪽 피해가 상당한 것 같다. 이래저래 고난의 시간이다. 다시 하이선이 올라오고 있다. 마치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에반게리온 같은 느낌이다. 태풍의 피해가 심각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감사제목
여름이는 회복되어 가고 있는 듯 해서 감사하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아 감사하다.
그나마 마이크세팅을 찾은 것 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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