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말했다. "담보물을 가질테면 가지라지. 우리가 계속 찾아다니면 다들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할 것이네. 나는 이 거래에서 내 도리를 다했네. 내가 새끼 염소를 보냈지만 자네가 그녀를 찾지 못한 것뿐이네. (23)
세 달쯤 지난 뒤에, 유다의 귀에 한 소식이 들려왔다. "자네 며느리가 창녀 짓을 하고 있네. 게다가 이제는 임신까지 했다는군."
유다가 고함을 질렀다. "그 애를 이곳으로 끌어내어 불태워 버려라!" (24)
유다는 아내를 잃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양털깎는 날이 되어서 그 마음은 풀어져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그는 거리에 있는 창녀를 보고 마음이 동했을 것이며, 다말은 이를 예상했다.
유다는 자신이 행한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감추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더이상 창녀를 찾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며느리에게 닥친 일을 듣자마자 그는 그녀를 불태워 버리려 한다.
그것은 명백하게 부끄러운 일이었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처리하고 싶어한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명예살인의 흔적이다.
지금도 무슬림권이나 인도에서는 가족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는 여인들을 가족들이 직접 살해하거나 상해하는 일이 많다.
그들은 그녀들이 가족의 명예를 실추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행하는 일이 어떠한 일인지, 그리고 자신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유다의 경우에서 긍정적인 면은 그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고, 그것은 다말이 행한 일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다말을 셀라에게 보내지 않았고, 자신이 창녀를 찾는 일을 했다.
그로 인해서 다말이 임신을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지곤 한다.
유다처럼 쉽게 거래에서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의 결정 때문에 다말처럼 괴로운 이가 있지 않을까 돌아보는 것이 먼저 필요한 일이다.
이는 약자중심적 사고이다.
부목사와 전도사를 위한 교회협동조합이 결성되었다고 한다.
열정페이를 주장하고 싶은 윗세대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조직일 것이라고 본다.
교회의 직에 대한 감각의 차이는 세대간의 갈등의 요인이 된지가 오래다.
선교단체와 교회에서 이러한 감각차이 때문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서도 우선되어야 할 것은 약자중심의 사고라고 본다.
교회가 헌신의 구조 속에서 지탱되어 온 것은 맞지만, 약자로 살아왔던 이들을 구조적으로 돌아보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약자가 약자로 여전히 남기를 바라는 것은 성경적 사고가 아니다.
그래서 약자들의 자기주장에 대해서 귀를 여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유다는 그러한 귀를 가졌고, 하나님은 그것을 크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기도
약자를 돌아보는 자로 살아가기를
감사
즐거운 생일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해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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