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말했다. "그들은 여기를 떠났다. 내가 들으니, 그들이 '도단으로 가자'고 하더구나." 그래서 요셉은 길을 떠나 형들의 뒤를 따라가다가 도단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7)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자, 그들은 그가 입고 있던 화려한 겉옷을 벗기고, 그를 붙잡아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그 구덩이는 바싹 말라서, 물 한 방울도 없었다. (23-24)
그런 다음 그들은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25)
요셉을 향한 형제들의 비정함이란.
이 비정함은 아마도 형제의 어머니들의 갈등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아내의 소생들이 가지는 열패감은 사랑받는 아내의 유일한 소생인 요셉, 그리고 그가 받았던 사랑을 보면서 더욱 쓰라리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은 요셉의 고급 겉옷을 볼 때에 어떤 것을 느꼈을까.
원래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저렇게 해줄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에 비해 요셉은 철이 없어 보인다.
남들이 듣기 싫어할만한 꿈 이야기를 굳이 모아놓고 자랑하듯이 하곤 했다.
그를 향한 핀잔을 염두에 두지 않고 천진난만해 보인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흔쾌히 행하고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보아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형들의 눈에는 그러한 긍정적인 성격마저도 못마땅한 듯 하다.
요셉은 형들을 찾아서 도단까지 간다.
가지 않아도 될 길이었다.
아버지에게 형들이 없노라고 보고했으면 끝날 일이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꼭 찾고 싶었다.
도단에서 형들을 만난 요셉은 반갑지 않았을까?
드디어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찾아오는 요셉을 보며 형들은 살의를 품고 있다.
요셉이 갇힌 구멍은 건천이나 말라버린 우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위의 그림처럼 생긴 우물은 절대 아니다.
저런 우물은 서구 사람들의 마을에서나 보는 우물이다.
요셉이 갇힌 곳은 저런 문명화된 구덩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암튼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가두고 자신들은 저녁을 먹는다.
날이 어둑해지고 있다.
요셉에게는 저녁을 주었을까?
25절의 저녁을 먹는 형들을 이야기한 것은 그들의 매정함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한다.
광야의 저녁은 모닥불 외에는 빛을 발하는 것이 없었을 것이며, 그들은 저녁을 먹으며 저멀리 상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요셉을 팔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요셉은 위의 그림에서처럼 겉옷을 빼앗긴 채, 제대로 옷을 걸치지도 못하고 구덩이에서 추워하다가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대체 인간은 왜 저렇게 잔인해지는 것일까.
요즘 태평양전쟁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유진 슬레지라는 저자가 쓴 체험담이다.
핵소고지라는 영화를 보며 태평양전쟁에 관심이 생겼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인 태평양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자료와 글을 찾아보면서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잔인함은 서로를 적대시하고 대상화시키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저자는 전쟁에서 전우의 시체를 볼 때와 일본군의 시체를 볼 때의 정서를 이야기한다.
전우의 시체를 볼 때에는 숨이 멎을 듯한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일본군의 시체를 볼 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머뭊거렸던 정서도 곧 일본군을 향해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정서 상태가 되어갔다.
요셉을 향한 형들의 정서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유다는 형제들에게 요셉을 팔 것을 제안하며, 따지고 보면 그 아이도 우리의 형제, 우리의 혈육이라고 한다(27절).
따지고 보아야 요셉이 형제이며 혈육이라는 것이 상기된다.
그것을 상기하기 전에는 그저 꼴보기 싫은 존재에 불과하다.
사람이 우리 안에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상화하는 정서로 들어가면 파시즘에 젖어간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미국 부지사의 아내가 인종혐오를 겪은 이야기가 올랐다.
파시즘이 다시 일상화되어가는 중이다.
다시 다른 이에 대한 폭력이 구체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시대이다.
평화를 추구하는 일은 이러한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기도
평화를 구하는 자로 살게 되기를
감사
생일이라고 축하가 쇄도하고 있음
오랜만에 서로 안부를 묻게 되어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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