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장막을 거두어 진 밖으로 나가서,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장막을 치곤 했다. 그는 그 장막을 회막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진 밖에 있는 회막으로 나아갔다. 그 일을 이렇게 진행되었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면 온 백성이 주의하여 서 있었다. 그들은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마다 저마다 자기 장막 입구에 서서 그를 지켜 보았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면, 구름기둥이 회막 입구로 내려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구름기둥이 내려와 회막 입구에 머무는 것을 볼 때면, 온 백성이 모두 일어섰다. 저마다 자기 장막 입구에 주의하여 서 있다가 엎드려 경배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웃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을 나누셨다. 모세가 진으로 돌아가도, 그의 젊은 부관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물렀다. (7-11)
회막의 존재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회막이 성막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온 백성이 볼 수 있는 위치는 성막의 위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모세는 자신의 장막을 거두어 기도하기 좋은 자리에 치고 그곳을 회막이라고 부른 것 같다.
모세는 이 행동을 반복적으로 시행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그러한 일을 할 때마다 인지하고 있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면 하나님도 모세를 만나러 내려오시곤 했다.
그리고 모세와 함께 마치 이웃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을 나누었다.
적어도 모세는 하나님에게 친구와도 같은 존재로 여겨진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보는 이스라엘 온 백성은 그것을 경외함으로 목도하였다.
어떤 이에게는 거룩한 일상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멀거니 지켜만보는 영적 실상일 수 있다.
모세의 회막은 하나님을 찾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그것을 자기공간으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 차이의 본질은 순종의 차이일 것이다.
하나님께 더 깊이 순종한 자만이 더 깊은 영적실상으로 진입하게 된다.
더 깊은 영적체험을 얻기 위한 편한 방식은 없다.
더 깊은 자아의 죽음을 경험할 때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감사
매일을 살아갈 은혜를 주시니 감사
기도
더 깊이 순종하고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는 자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