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때를 정하시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내일 이 일을 행할 것이다." 이튿날 하나님께서 그대로 행하셨다. 이집트의 가축은 모두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일어난 일을 알아보니, 과연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백성을 내보내려 하지 않았다. (5-7)
자고 일어나 보니 눈세상이다.
딸들은 눈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니 그것도 당황스럽다.
최배근 교수가 쓴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20세기에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큰 재앙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재앙들이 가지는 우연에 가까운 확률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재앙들이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만해도 그 가능성만으로 따져보자면 너무도 작은 것인지라, 인류는 그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여러가지 재앙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은 어떠한 해로 기록될까.
어쩌면 기술과 진보를 믿던 인간의 한계를 처절하게 느끼는 한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복하지 못하는 바이러스로 인해서 인간은 자아경계를 최대한으로 줄여야만 했다.
마치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는 바로처럼 인간이 지금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원하시는 것은 철저한 자기인식과 무너짐 이었다.
바로 앞에 내려진 재앙은 명확하게 하나님과 이집트와의 싸움이었다면, 현재의 재앙의 주제는 숨겨져 있다.
그때에는 명백하게 보호하려는 대상이 보였고 그 지향도 보였지만. 지금의 재앙은 전지구적이며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듯 하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야 할 자기성찰과 회개는 더 광범위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방금 통화한 누군가는 2020년 한살만 꽁으로 먹어 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자의식조차도 의미없는 듯 하다.
우리는 오늘 하루, 우리의 조건에서 예수의 삶을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눈세상으로 마무리될 것 같은 2020년.
2021년은 어떠한 한해가 될지 도통 알수가 없다.
그래도 하루하루 눈감지 않고 살아야 겠다.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다.
감사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만한 눈이 와서 감사
기도
오늘 하루도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