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바로 옆동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포털사이트에서 읽게 된다.
당연히 교회 오프라인 모임은 쉬고 온라인으로 전환하기로 하였다.
아이들 학교도 쉰다.
몇 주간 그나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는데, 다시 코로나 방학 중이다.
다시 이러한 일상을 맞이하게 되자 일종의 무기력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어찌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일상의 모임들이 재개되면서, 다시 이전의 감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이제는 정말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코로나만이 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차츰 코로나가 정지시키는 세상을 보며, 욕망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더 자세히 살펴보니 코로나 이전의 세상에서 나 자신이 욕망의 작동방식으로 살아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더이상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자 내가 느끼는 허무함과 좌절감 때문이다.
말 그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연경 교수가 쓴 '위선'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언급되는 율법의 문제를 다소 새로워보이는 시각으로 읽는다.
바울은 율법에 열심을 내는 율법중심의 사고를 하는 이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라는 도구로 위선을 감추었던 이들에 대한 정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언급하는 할례는 율법의 열심을 내는 중에 지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준수하는 것을 통해서 남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서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이 지적하시는 죄의 본질에 위선이 있노라고 주장하며 설득한다.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이고, 자신의 존재를 어떤 편리한 가면 뒤로 숨기는 것이다.
예수는 그런 의미에서 종교지도자들을 경계했고 그들과 각을 세우셨다.
그렇기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위선'이라는 것의 범주에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갔던 방식에서 그들에게 제공하거나 그들과 나누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들을 제거하고 나니, 나의 존재의 가난함을 맞닥뜨리게 된다.
실제로 나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였는지 잊어버리며 살아왔다는 현저한 깨달음이 엄습해 온다.
그렇기에 이 코로나의 다시 찾아온 위기는 정말 네 자신을 살펴 보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더이상 네 자아로 살아가지 말고 이제는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언제나처럼 직면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회개의 기회이기에 소중하게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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