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방콕의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드라마라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중에 빈센조가 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보고난 후, 생각이 좀 많아졌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로 밀어부쳐서, 악은 악으로 이긴다는 컨셉을 유지해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빈센조가 이야기하는 악은 현실적이다.
그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은 빈센조에서 등장하는 절대악이 저지르는 일들이 우리의 현실 언저리에 실제하며, 그러한 현실의 일부를 우리는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일들은 음모론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그 일들은 힘이 없으면 알아낼 수 없다.
빈센조라는 드라마에서 힘을 가진 이들은 그 힘을 풀파워로 드러낸다.
양심의 가책이나 의구심 따위는 없다.
그저 자신들이 그것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 앞에서 양심적으로 자기를 지키고 법테두리 안에서 올바른 것을 지켜보려고 하는 이들은 하릴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빈센조와 같은 인물이 해도해도 너무한 그 악을 정돈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빈센조 주변의 사람들은 그 빈센조의 방식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이들로 변해간다.
빈센조를 돕는 이들은 대체로 능력을 갖추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할 방법이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빈센조라는 인물을 만나, 빈센조의 방식에 자신들의 재능을 얹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정의의 시행으로 인한 일종의 효능감을 얻게 된다.
요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세상이 과연 더 좋아질까 에 대한 의구심이다.
촛불시민운동이 전개되면서. 이러한 깨어있는 시민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의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차 그러한 소망이 내 안에서 쇠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검찰로 대표되는 집단은 쉽게 힘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실상 대중을 개돼지로 여기는 듯 하다.
얼마든지 조작가능한 대상으로 여기며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작태를 보고 있는 내가 지쳐간다.
김어준과 같은 이가 많은 영향력을 끼친 것은 그가 기존의 문법을 깨고 '잡놈'의 방식으로 상대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이명박과 같은 정치적 협잡꾼은 잡놈의 방식이 통했다.
건전한 상식을 갖추고, 젠 체 하지 않으며, 끝까지 물어뜯는 방식은 기존에 존재하던 일종의 암묵적 질서를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이는 우회로가 되어서 기존의 유착들의 틈을 포착해 내었다.
그런데 검찰과 같은 세력들은 새로운 형태의 빌런이다.
이 빌런은 마치 거대한 유기체와 같이 작동하며 그들을 향한 공격을 비껴가고 있다.
그들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방식은 더욱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재보선의 결과는 더욱 암울하다.
당선된 후보들의 도덕적 면면은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물론 민주당이 절대선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투표의 결과는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참이나 후퇴한 것임은 분명하다.
드라마 빈센조는 이러한 좌절과 공허를 잘 짚어내고 있다.
드라마 빈센조에서 검찰의 세력을 이야기하는 대사는 명대사이다.
드라마 빈센조가 악을 이해하는 방식도 현재의 좌절을 반영한다.
이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빈센조는 구원하는 폭력을 세련된 방식으로 구현해 낸다.
빈센조는 절대악들을 직접 단죄한다.
그것도 매우 잔혹한 방식으로 단죄한다.
그리고 자신도 악인임을 인정한다.
악으로 악을 이기는 것 이외에는 더 큰 악을 제어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온전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악을 단죄하는 자기확신은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으른 생각으로 인해 자기확신에 빠져들고, 그러한 확신으로 쉽게 누군가를 배제하고 폭력을 가해도 괜찮은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도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두 자매가 일하는 상점에 들어와 시멘트 벽돌로 내리치는 영상의 잔상이 지금도 남아있다.
가차없는 그러한 폭력적 일상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다.
그래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브레이크 없는 치킨게임이 그 규모를 더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또다른 파시즘을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빈센조를 보면서 그저 시원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우리의 세상에서 거대해지는 악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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