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과연 하나님께서 이 여행 목적을 이루어 주신 것인지, 그 사람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21)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딸들에게서 며느리를 찾기를 원치 않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친족, 하나님을 아는 이들 가운데서 며느리를 찾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이 신뢰하는 종과 맹세를 하고 종을 파견한다.
종은 하나님께 나름의 표적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
그리고 종은 그 표적을 구하는 기도가 성취되는 것을 목격한다.
게다가 그 표적을 성취한 처자는 아름답기까지 하고 체력도 좋고, 아브라함의 친족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 모든 되어진 일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이 장에 정작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들 하나님의 뜻을 추정하는 인간들이 등장할 뿐이다.
인간들은 그 하나님의 뜻을 추정하며 자신의 선택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결국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이삭에게 시집을 가기로 결정한다.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었을까.
과연 그것이 가나안의 여인을 맞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까.
대체로는 그렇다고 추정할 수 있다.
가나안의 여인이 며느리로 들어왔다면 아브라함이 받은 소명에 치명적인 결과가 형성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그 가정으로 그로 인해서 평안할 것이라는 추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삭의 가정은 꽤나 복잡하고 갈등도 많던 그런 가정이었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가정만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과연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뜻은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다른 영역만큼 분명하지 않다.
하나님은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우리의 진정성을 보시고 우리의 신뢰를 보시는 듯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분별, 아브라함의 종의 분별, 그리고 리브가의 분별을 인정하신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정성이다.
그만큼이나 인간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가는 것은 구름 속을 헤메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많다.
비대면의 시대로 흘러갈수록 인간관계에서 이처럼 분별하고 모험을 해가는 일은 더 어려워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분별을 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분별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점도 유념해 볼 만하다.
기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용기있게 실천해가기를
감사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을 맞게 해주심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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