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라반은 그날로 얼룩지고 점이 있는 숫염소와 얼룩지고 점이 있는 암염소와 검은 양과 흰색 기미가 도는 가축까지 모두 가려내어, 자기 아들들 손에 맡겨 돌보게 했다. 그런 다음 자신과 야곱 사이에 사흘 거리를 두었다. 그동안 야곱은 라반의 남은 가축 떼를 돌보았다. (35-36)
겉다르고 속다른 것이 라반의 실체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종을 만난 때부터 일관되게 이익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종을 만나는 장면과 야곱을 만나는 장면은 유사하며, 그가 끝내 야곱에게서도 이익을 추구하리라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자신의 딸을 이용해 야곱에게서 14년간의 노동착취를 이끌어낸 그는 야곱이 자신의 딸을 둘이나 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에게 어떠한 재산도 넘겨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신비로운 방식을 알려주며 야곱의 재산을 증식시키도록 하시는 것은 이러한 라반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반이 핑계댈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야곱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주시려고 하신다.
이 세상에서의 노동의 합당한 대가라는 것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생각하고 기대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좌절을 느낄 뿐이다.
본문에서도 적절한 노동의 대가는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노동의 합당한 대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맷돌을 돌리는 짐승이 곡식을 먹는 것을 막지 않으시는 분이다.
노동이 이루어진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를 원하신다.
불로소득을 취하는 건물주와 같은 라반의 편에 서지 않는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노동과 대가 사이의 합당한 관계를 원하시기에 우리는 그를 추구하며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실제의 이 세상은 그러한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세상에 살면서 노동의 영성을 갖추어야 한다.
노동을 하되 노동에 잠식되지 않아야 한다.
수도원에서는 노동을 하는 시간을 정해 두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상관이 없다.
무조건 시간이 되면 일을 그쳐야 한다.
노동없는 삶도 문제가 되었다.
노동을 거부하는 수도사에게는 징계가 이루어졌다.
결국 우리의 노동은 삶을 가능하게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풍요롭게 해주어야 한다.
자기자신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균형을 이루게 해주는 노동은 자기자신을 온전히 의식함이 포함된다.
노동만 하다가 자신을 잃지 않고, 자기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노동의 영성이다.
우리를 무리하게 노동하게 하려고 하고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라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야곱은 그러한 노동환경에서 하나님의 길을 찾는다.
우리도 우리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기도
노동의 영성을 갖추게 하소서
감사
드디어 마이크 세팅을 찾음. 이제는 줌모임이 기다려짐. 감사.
'말씀으로 묵상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32장 묵상 (0) | 2020.10.04 |
---|---|
창세기 31장 묵상 (0) | 2020.10.02 |
창세기 29장 묵상 (0) | 2020.09.29 |
창세기 28장 묵상 (0) | 2020.09.28 |
창세기 27장 묵상 (0) | 2020.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