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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마지막 시대, 그리고 교회에 대한 고민



교회에 몸담고 있는지도 이제 8년이 되어간다. 

교회 구조 안에 들어오기 전에 목사라는 사람이 대체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던 1인이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전임으로 지내면서 결국 나는 교회라는 구조 바깥으로 나가야 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가 결정적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교회가 가지는 피상성이 더욱 심각해져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라는 구조가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현실에 대한 적응성이 부족해지고 자체의 논리를 가지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교회의 건물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해올 때가 있다. 

그 커다란 건물의 효용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집을 지으려고 하다가 건축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보는 것에 의하면 평당 건축비가 교회만큼 싼 건물이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대다수의 교회건물은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 내실을 죽이는 방식으로 지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일주일에 몇번 쓰지 않는 거대한 모임장소. 그것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의 이면이다. 


헌금의 절반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이 교회의 유지비용으로 쓰인다. 

난방비. 전기세.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 더 나아가 목사의 사례 등으로 지출된다. 거의 대다수의 교회가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는 교회는 교회를 위한 구조가 되어버리고 만다. 


교회 안에 교회를 위한 논리가 생겨난다. 

커다란 사이즈의 교회가 계속 생겨나고 그러한 사이즈의 교회가 생겨나는 이유는 교회 안 아니고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어 버리고 만다. 

교회 안의 특정한 행사와 상황을 감당하기 위해서 비효율적인 구조를 지탱해가야 한다.


상상을 해보았다. 

교회라는 건물의 구조를 버리면 어떻게 되나?

모임장소가 필요하면 일주일에 한번 빌려서 사용하고 대신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을 삶을 잇댈 수 있는 구조에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그루터기 공동체는 이러한 상상의 소산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모임을 위한 최소한의 모임공간을 마련하되, 그 공간을 무척 효율적이어야 한다. 

한가지 목적이 아닌 다용도의 공간일수록 좋다. 

덩치를 키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최대한 집적도가 있는 공간이 되기위해서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공간이 필요한 경우는 그때 고민한다. 그때에도 그 모임만을 위한 공간은 시도하지 않는다. 

교회 안의 관리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면 도모할 수 있는 일도 그만큼 늘어난다. 


사실 소득의 1/10을 모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적 연금보험정도의 비용이다. 

이정도의 재정지출로 이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남기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의 비효율적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의 구조를 버리기로 한 것은 그 이상의 문제이다

그것은 교회가 이 세상의 문제에 더이상 적실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몇년간의 교회 부목사 생활을 하면서 교회행사에 참가했다.

거의 뒷자리에 앉아서 모임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이 곳이 과연 이 세상의 한복판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게 될 교회의 무너짐을 보고 있는 듯 하다. 

대체 어디에서 다시 교회의 소망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는 엄청난 싸움이 있고 분투가 있다. 

삶에 허덕이는 이들은 진정으로 신앙적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나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에 참여한 이들의 모습에는 그러한 간절함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설교의 행위가 당사자들에게 절실하게 다가가지 않는 것 같다. 


결국에 내가 인정해야 했던 것은 지금의 교회는 이 세상의 싸움에서 빗겨가 있다는 것이다. 

교역자실에 앉아있으면 세상을 떠나있는 것 같다. 

가끔은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미안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교회를 떠나서 세상으로 갈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서 목사로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심의 결론이 어떠한 것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목사생활 14년만에 내린 나의 정직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