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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크리스텐덤

8. 교회는 없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만큼 교회에 대해서 혼란스럽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대형교회는 갈데까지 가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로 알려진 교회이탈현상은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이는 교회의 민낯이 드러나는 현상이자, 자연스러운 교회해체현상으로 보인다. 세대로 살펴보자면 현재의 지역교회의 중심은 50대 이상이다. 한국교회는 다음 세대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 없는 완고함에 붙들려 있다. 교회도 사회의 일원이며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교회도 그 흐름에 걸맞게 변화해 갔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교회는 그 변화의 흐름을 현저히 놓치고 말았다. 이제는 그 기회를 놓치고 따라가기 어렵다고 할만한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의 세상.. 더보기
6. 포스트크리스텐덤, 그리고 개인의 자유 복음주의는 크리스텐덤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크리스텐덤의 혜택을 보았고, 또 한편으로는 크리스텐덤 바깥에서도 지속성을 유지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 복음주의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복음주의는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개인회심 중심의 신앙운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국은 좀더 근본주의적 경향으로 치우쳤다면, 영국의 복음주의는 현실의 문제를 폭넓게 살피려는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개인의 회심. 그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회심한 개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동안 했었다. 회심 이후에는 성령이 이끌어가는 삶이 시작되며, 그 삶은 아주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되는 신비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심한 개인도 얼마든지 무너지고 돌이키고, 심지.. 더보기
5. 복음주의 키드, 포스트크리스텐덤을 만나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4년의 캠퍼스는 활발한 문화의 집약지였다. 오후5시 종강 이후에도 학생들은 좀체 집에 가지를 않았다. 그때부터 캠퍼스는 사물놀이패들의 소리로 활기찼고, 동아리방마다 사람들로 그득그득했다. 그 가운데서 캠퍼스의 복음주의 선교단체들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캠퍼스 선교단체의 숫자도 많았고, 각각의 영향력도 대단했다. 대형집회 전문이었던 CCC, 찬양사역과 은사운동에 정통했던 YWAM, 철저한 신앙훈련으로 유명했던 UBF와 네비게이토, PBS와 세계관 운동을 했던 IVF 등. 각 단체들은 자신의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복음주의 서적과 활동에 매력을 느끼던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교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가장 나의 성향에 맞다고 생각했던 IVF에 들어간 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