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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중간 항로, 그리고 위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참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이 중간항로의 기간동안에 불륜에 빠져드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생각보다 많은 목회자와 복음주의자, 사회지도층들이 이러한 일 때문에 자신의 경력을 망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중간항로에 대한 생각 중에 조금은 그 메커니즘을 알고 이해하게 된 듯 하다. 

 

장기간의 친밀한 관계인 결혼만큼 중년에게 상처와 실망을 주는 것은 없다. 

결혼생활에 너무 많은 희망과 욕구를 걸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간항로를 거치는 이들은 자신과 배우자 사이에 수없이 많은 긴장과 피로가 얹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장 알기 어려운 감정인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보다도 중매결혼이 오히려 더 잘 유지되어 왔다. 

낭만적 기대와 서로에 대한 투사 위에 자리잡은 결혼보다는 현실적 필요에 따른 결혼이 더 오래갈 확율이 높은 것이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만큼 투사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상대가 도끼 살인마인지 누구인지 몰라도 사랑에 빠진 당사자만은 한동안 투사를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날마다 함께 생활하다보면 이전의 투사는 무자비할 정도로 깡그리 지워지고 만다. 

우리는 타인은 타인일 뿐, 자신의 거대한 투사를 원하지 않으며 거기에 맞춰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중년에 이르면 '당신은 내가 결혼한 그 사람이 아니야'라고 결론짓곤 한다. 

 

그래서 이 관계가 새롭게 정돈되지 않으면 중간항로의 시기에 자칫 좌초할 위험을 겪게 된다. 

'마법처럼 우리를 구원해줄 타인'이 아닌 '인생의 더 큰 의미를 찾는 데에 가까운 관계의 타자가 주고받을 수 있는 영향력'으로 의제설정이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투사를 놓아보내고 나면 배우자의 다른 점 때문에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투사를 놓아보내고 자신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배우자가 성장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애정관계는 결국 삶의 여정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혹은 삶의 수수께끼에 좀더 다가가고 싶다는 의식적인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유년기에 전해받은 내면의 선이해에 의해 성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이혼 직전의 부부들은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을 행하다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아챈다. 

남편은 자신의 분야에서 앞서가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의 삶이라곤 없었다고 분노한다. 

아내는 집안일을 하며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정적 자신의 직업적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피해자다. 

자신의 부모들이 했던 것처럼 능력껏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분노만 쌓이는 결과를 빚게 된다. 

이들이 선의를 되살리고 배우자에게 씌운 부정적 투사를 걷어낼 수 있어야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돌아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지난하고 관계를 돌이키는 것이 만만치 않기에 다른 대안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다. 

헨리크 입센의 유명한 희곡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자신의 남편과 자식을 떠나는 선택을 한다. 

이 희곡이 상영될 때에 유럽 각국의 수도에서는 폭동이 뒤따랐다고 한다. 

이 희곡이 결혼제도와 가족제도에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노력과 자기성찰이 있지 않는다면 노라의 선택은 실질적 선택이 될 수 있고, 이러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실질적 냉각기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문제는 중간항로의 시기에 충분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자기노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남성들은 마음이 굳어진 채 중간항로의 시기를 살아간다. 

감정과 본능적 지혜를 회피하고 내면의 진실을 무시하도록 길들여진 채, 타인에게 낯선 사람이며 돈과 권력과 지위의 노예로 살아간다. 

로버트 홉키라는 정신분석가는 남성이 자신을 내재화하고 실제 감정을 직면하는 데 약 1년이 걸린다고 했다. 

여성들이 치료를 시작할 시점까지 오는 데만도 남성은 1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도 그러한 힘이 없다. 

원래 자신이 지녔던 힘을 내면의 부정적 목소리가 모두 갉아먹어 버리고 난 후에 이러한 문제를 만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전통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지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대적인 여성은 전통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지지 않으려고 성 역할 자체를 거부하고 용감하게 싸우기를 선택하는 듯 하다. 

 

중년의 바람기는 중간항로를 겪는 이들을 지배하는 문제가 되곤 한다. 

미국의 통계지만 기혼자 중 절반 이상이 혼외관계 문제를 겪고, 남성은 여성보다 다소 높은 비율로 이러한 문제를 겪는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로 결심한 사람이 없겠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초기의 전망과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중년의 바람기는 1차 성인기로 회귀하려고 하는 본능 때문일 수 있다. 

남자들은 젊은 여자들과 그리고 아내들은 더 나이많은 남성과 바람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로 표현되는 이것은 남성에게는 여성성이, 여성에게는 남성성이 요구된다는 이론이다. 

남성은 자신의 미성숙한 아니마를 반영하며, 여성이 지위나 나이가 있는 남성에게 끌리는 것은 자신의 불충분한 아니무스를 발달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처럼 중년의 바람기가 의미하는 것은 삶을 되짚어가서 발달과정에서 놓고 온 무언가를 다시 붙잡아야 한다는 명령 혹은 무의식적 현혹이다. 

 

중간항로의 시기에 결혼의 관계는 이처럼 심각하게 위협받으며 해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를 통과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새로이 구성할 수 있는 자기성찰, 그리고 배우자인 타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야 한다. 

개별화되어가는 자아에 대한 서로의 존중이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진정한 사랑의 시점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그냥 알아서 되는 사랑이 아닌 적극적으로 행하는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행하는 사랑이란 사랑할만한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에 행하는 것이며 전존재를 드러내고 내어주면서 하는 사랑이다. 

우리는 이 진짜 사랑을 할 줄 알아야 하며, 그 사랑을 배워가야 중간항로 이후의 시기동안 결혼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게 사는 것이라면 쉽겠는데, 그게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다.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예수처럼 인간답게 살아가다가 가는 것이 쉽지 않다.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것을 해내는 것을 목표로 두는 삶이다. 

중간항로의 시기는 그런 면에서 커다란 위기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