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풀어놓기

2. 유년시절 그리고 신화적 세계

나는 75년생이다. 일명 X세대라고 불리우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낸 세대이며, 문화적인 풍성함을 경험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세대에 속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인 에코 세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또래집단은 풍성했다. 

어딜 가나 젊은 세대들로 넘쳐났고, 교회에서는 그 많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관리하기에 바빴다. 

 

한국교회는 우리가 어렸던 시절 호황의 마지막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주일학교를 다닐 때의 고민은 지금처럼 아이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회에 아이들이 모일 곳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린 우리를 위한 교육관 공간이 부족해서 교회 옆 허름한 한옥에서 임시로 교육관을 만들어 수용하기도 했었다. 

성경학교를 하면 아이들로 넘쳐났고, 특히 절기에는 교회에서 어떤 선물을 주는지에 따라서 평소에 교회에 다니지 않던 친구들도 교회를 순회하곤 했었다. 

 

아버지는 뒤늦게 회심하셨고, 신앙생활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 분이셨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의 신앙원칙에 당연히 맞추어가야 했다.

주일이 되면 새벽에 일어나 아버지를 따라 교회를 가야 했다. 

새벽에 잠이 덜깬 채, 아버지를 따라 어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교회까지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으시며 우리의 짧은 보폭을 염두에 두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나는 헐떡이며 아버지를 따라가곤 했다. 

지금도 그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아버지의 뒷모습과 함께 기억이 나곤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성경고사라는 것을 준비했다. 

52주 공과에 있는 요절을 모조리 외워야 했고, 공과에 있는 모든 인간관계와 주요한 내용을 모조리 암기해야 했다. 

교회마다 자부심을 걸고 이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다. 

우리는 나름 엄선된 집단으로 구성되어 요절을 외기 위해서 달력을 잘라 길게 두루마리를 만들고 1과에서부터 제목 요절 장절을 적어 외워나갔다. 

결국에는 보지도 않고 그 모든 두루마리를 다 외워야 전국고사에 입상할 수 있는 실력에 이르게 된다. 

초등학교 4학년때 서울에 있는 거대한 교회에 가서 거대한 무리들과 함께 시험을 보았다. 

그때 나는 전국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는데, 내가 틀린 문제는 "내가 네게 말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을 때 "내"와 "네"를 구분하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나는 문법적 실력도 갖추지 못한 데다가, 전라도 사람이었는지라 그 두 발음이 그다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 하나 구분 못해서 전국대회에서 씁쓸하게 탈락을 해야 했다. 

다른 친구들이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다음에는 상을 받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며 심기일전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결국 전국대회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자부심은 한동안 나를 지탱했던 자부심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일학교 공과시간에 배우는 것이 시시해졌다. 

나는 성경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드러낼 때 교회 어르신들은 무척 대견해 하셨다. 

아마도 신앙으로 다음 세대를 잘 기르고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의 교회는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교회는 학교보다도 더 많은 진기한 교육자료를 가지고 있었고, 간식도 많이 주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이기도 했고, 놀 거리가 많지 않았던 우리의 유년 세대에 새로운 놀거리를 소개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공간에 있는 것이 그리고 그 공간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성장의 동력이 활발하게 살아있었고, 교회 전체가 그 동력으로 인해 들떠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잘해보자는 의식이 존재했고, 그러한 역동적인 분위기에 온 세대가 교회문화에 젖어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한 성장의 동력은 신화적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많은 간증들이 교회에 넘쳐났다. 

기도하면 이루어지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어려움과 역경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었다. 

밤이 새도록 기도하며 자신을 그러한 신화적 세계에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다. 

교회는 이래저래 참으로 신기한 곳, 그리고 무언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때의 교회의 성장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장과 맞물려 있었다. 

높은 경제성장율은 하면 된다는 의식과 깊이 결합되었고 신화적 세계가 결합되어 더욱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80년대의 이러한 성장은 대한민국의 세속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돈만 추구하는 것은 천하다고 여겼던 의식에서 돈이 축복이라는 의식으로 변하게 된 것은 그에 대해서 교회가 세례를 베풀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때의 교회는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었다. 

이대로 열심히만 한다면 천국을 이땅에 이룰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높던 경제성장율이 사라진 이 시점에서 그러한 신앙적 열정은 어떻게 유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제는 묻게 된다. 

아름다운 신화적 세계를 이야기할 때 성취를 빼놓으면 성립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성취를 가져다주는 신화적 세계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지속적으로 어려워지기만 하는 세상이며, 그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이 대책을 세워가는 것이었다. 

80년대생은 자신이 극한의 경쟁을 뚫고 나가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90년대생은 그마저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인생이 재미있게 흘러가기만을 원한다. 

이러한 세대들은 80년대의 성취를 이루는 신화적 세계를 이야기하는 교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옛 담론에 붙들린 교회와 젊은 세대들은 유리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를 지배하던 성공신화와 축복의 맥락이 아닌 본류적 신앙의 내러티브가 필요해 보인다. 

원래 성경적 기독교는 잘나가는 시대의 주류를 위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나그네와 같던 그 시대의 소수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은근히 우리 안에 존재하는 주류의식, 성공신화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이 우리 안에 담길 가능성이 생겨나게 될 것 같다. 

 

 

 

'생각풀어놓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교회, 그 애증의 공간  (0) 2019.06.06
3. 문화의 세례, 그 너머의 것  (0) 2019.06.05
1. 길을 잃다  (2) 2019.06.04
4.3 70주년에 평화를 생각함  (0) 2018.05.23
르네 지라르를 통해 인간을 생각하기  (0) 2018.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