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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4. 교회, 그 애증의 공간

내가 다니던 교회는 꽤 보수적이고 꽤 커다란 교회였다. 

그러한 교회에서 나의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내게 있어서 좋아보이는 경험이었다.

중등부와 고등부를 거치며 임원을 했고, 그러는 중에 신앙이 괜찮은 아이로 자리매김했다.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누구 누구의 자식이로구나' 하는 말을 들으면 괜히 아버지 어머니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렇게 자리매김해 가는 자녀들을 보는 것이 자랑스러우셨던 것 같다. 

 

중등부 때 수련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한 이후에는 내 자신에게도 자신이 생겼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보수적인 교회였는지라, 그 정도의 경험이면 괜찮은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수련회 마지막 날 기도회 때에 울었던 것이 어떠한 경험인지 잘 정의내리기 어렵다. 

그때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러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눈 기억은 없다. 

분명히 죄와 회개에 대한 메시지였던 것 같은데, 그 메시지가 기억나기 보다는 졸린 가운데서도 촛불기도회를 해야 했던 것. 그 중에 '작은 불꽃 하나가'라는 노래가 꽤 내 감성을 자극했던 것. 그리고 강사가 예수님의 고난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닥에 허리띠를 자꾸 내려쳤던 것 등이 기억난다.

어찌 되었든 교회문화의 인사이더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것 같다. 

 

교회에서는 점점 인사이더가 되어 갔다. 

그당시 중고등부에는 오후에 따로 모이는 모임이 있었는데, 이 모임에서는 소그룹이 짜여졌고, 그 소그룹에서 성경공부를 했다. 

전도사님이 일방적으로 이끄는 모임이 아니었다. 

전도사님은 지도만 할 뿐, 학생리더들이 미리 예습을 해오고 그것을 나누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그 모임에서 동기 친구들을 만나 찬양을 하며 놀기도 했고, 마음이 맞으면 특송을 준비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모임들이 자발적으로 운영되었을까 싶다. 

 

그 모임에서 배우고 더 나아가 가르치기 시작했던 내용은 그 당시 선교단체에서 만든 교재들이었다. 

기독교의 교리를 정리한 교재도 있었고, 성경본문을 직접 공부하는 교재도 있었다. 

나는 성경말씀을 공부하게 하는 IVP교재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전에 공부하듯 알았던 말씀들이 내 마음에서 풀어져 감동이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으로 내가 세워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갔던 것 같다. 

QT라는 것도 배워서 열심히 했고, 거의 매일 하려고 노력했다. 

학교에 갈 때도 성경책은  꼭 가지고 다녔고, 쉬는 시간에 성경책을 주로 읽곤 했다. 

그에 파생하여 신앙서적도 읽기 시작했다. 

두란노와 IVP, 생명의 말씀사 등 구해 볼 수 있는 책을 구해서 읽었고 신앙의 세계가 무척 크고 도전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체성을 형성하던 시기의 이러한 경험들이 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는 중에 만나게 되는 교회라는 공간에서 얻게 된 경험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알아가게 되는 현실의 교회는 성경에서 알게된 교회, 그리고 신앙서적에서 만난 교회와 달라 보였다. 

자신의 전통에 갇혀서 예수를 알지 못했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권위적이기만 하고 소통할 줄 모르고, 자신의 말에 굴복하는 이들만을 만들어 내려는 것 같았다.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욕심덩어리들처럼 보였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성장해감에 따라 우리에게 '공부 잘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녀'의 틀에 들어가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른들은 우리가 오후에 교회에 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이해해줄 어른을 찾아다녀야 했고, 어른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급기야 내가 고등부 회장이던 때에 오후 성경공부를 폐지했다. 

나는 당회에 진정서 비슷한 것을 적어 올렸던 것 같다.

그러나 철저히 무시당했다. 

 

고3때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기를 강요당했다. 

고3이 교회에 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인양 여겼다. 

그때는 그렇게 지내고 대학에 가서 맘껏 신앙생활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완벽한 타협이며, 비겁한 행동이었다. 

처음에는 항명해 보았지만 결국 교회의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어 아버지 어머니와 타협을 한 후,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쳐야 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한다. 

어르신들은 대체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했던 것일까. 

우리가 자신들의 안에 있는 것을 파악하기에 지나치게 어렸다고 생각했을까?

그러한 행동이 결국은 욕심에 가득한 행동으로 해석되어 보인다는 것을 몰랐을까?

공부를 잘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는 것을 진정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을까?

그때의 교회경험은 내게 커다란 문제의식으로 작용했고, 교회가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곳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내가 사랑하게 되었던 교회를 진정으로 회복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과제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권위적인 교회, 세상적인 교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권위주의적이며 세속을 추구하지 않는 교회를 만들어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후에 실제로 교회라는 공간을 형성하면서 그와는 다른 관점의 문제에 대해서 내가 취약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할 이야기다. 

적어도 이 때는 이것이 과제처럼 여겨졌고, 이것만을 벗어나면 한국교회가 좋아질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여전히 가치를 추구할 공간이 확보되고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매사에 때가 있는 듯 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회로 알고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함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오만함은 때를 놓치는 지혜롭지 않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의 때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죄로 인한 것들을 태워버리기를 원한다. 

다음의 시대는 더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