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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5. 복음주의 키드, 포스트크리스텐덤을 만나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4년의 캠퍼스는 활발한 문화의 집약지였다. 

오후5시 종강 이후에도 학생들은 좀체 집에 가지를 않았다. 

그때부터 캠퍼스는 사물놀이패들의 소리로 활기찼고, 동아리방마다 사람들로 그득그득했다. 

그 가운데서 캠퍼스의 복음주의 선교단체들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캠퍼스 선교단체의 숫자도 많았고, 각각의 영향력도 대단했다. 

대형집회 전문이었던 CCC, 찬양사역과 은사운동에 정통했던 YWAM, 철저한 신앙훈련으로 유명했던 UBF와 네비게이토, PBS와 세계관 운동을 했던 IVF 등. 각 단체들은 자신의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복음주의 서적과 활동에 매력을 느끼던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교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가장 나의 성향에 맞다고 생각했던 IVF에 들어간 나는 그곳에서 경건주의와 복음주의에 매료되었다. 

대학 전공공부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신앙서적을 읽고 세계관 형성을 했다. 

나의 캠퍼스 생활의 7할 이상은 캠퍼스 선교단체에서의 삶이 차지했던 것 같다. 

방학에도 온갖 수련회와 활동을 하기 위해서 고향에 내려가지를 않았다. 

지성사회의 복음화, 그리고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모토는 오롯이 나의 것이 되었다. 

 

결국 나의 삶의 방향은 내가 경험한 교회현실에 이러한 복음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모이게 되었던 것 같다. 

적어도 그때에는 나를 좌절하게 했던 가부장적 교회에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접목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보였다. 

여전히 교회는 문제가 많아보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아 보였다.

내가 대학 4학년 때 신학대학원으로 가기로 결정하게 된 것에는 이러한 생각의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단체의 수혜를 받는 시기였다.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리우던 이들이 좀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이를 수용했고, 차츰 한국교회가 이를 받아들여가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의 동력상실을 90년대 복음주의 단체의 활동으로 수혈을 받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들은 대형교회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고 그 나름의 메카니즘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를 살아가던 나의 모습을 지금 평가하자면 '복음주의 키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복음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이 참 좋아 보였고 옳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에서 정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의 과제는 내가 더 철저한 복음주의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시절의 자부심을 공유하는 이들을 만나면 참 반갑다. 

적어도 그때 그 가치를 추구했던 이들 사이에 가지는 공유의식은 마치 학생운동을 함께 경험한 이들의 순수의식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때는 그러한 의식공유를 한 이들에 의해서 다음 세대 한국교회는 반드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그렇게 열정적이고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갈구하던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우리는 교회로 흩어져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지 못했을까?

지금 그들은 어디어 어떠한 가치로 살아가고 있을까?

 

물론 지금도 복음주의권의 서적이나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그때 그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교회로 확산되기 보다는 오히려 서서히 동화되거나 블럭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내가 걷는 길이 점점 외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크리스텐덤은 기독교가 세상에 영향을 주었던 세상을 일컫는 표현이다. 

콘스탄틴 1세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시대적 구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화 자체가 기독교에 의해서 영향을 주고 받는 세상이다. 

중세시대에 출교를 하거나 수찬금지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세상 밖으로 내쫓는 것이었다. 

한국사회가 과연 크리스텐덤을 겪었는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때 교회성장을 맛보고 성취를 맛보았던 이들의 정서에 주류의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시대가 포스트크리스텐덤에 이르렀다는 것은 더이상 그러한 주류의식으로는 접근할수도 해석할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몇년 전 청년부 사역을 하면서 교회의 높으신 장로님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청년들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된다고 쓴소리를 했을때 높으신 장로님이 그러셨다. 

전에 자기도 다 해보았고, 자기가 내 머리꼭대기 위에 있다고 했다. 

미래에 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인식 때문이었다고 본다. 

 

복음주의 키드로 살던 이가 점차 쇠락해져가는 기독교세계를 경험하다가 결국 포스트크리스텐덤을 만나게 되었다. 

이 간극은 나로 하여금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했다. 

무언가 해볼 수 있는 판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배운 것을 풀어놓기 위해서는 열정이 있는 판 자체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공간 자체가 소멸되어 가고 있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실천하고 싶어도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하니 나는 점점 시대부적응자처럼 느껴진다. 

 

가치가 훼손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교회는 중요하다. 

훼손되는 가치를 보존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포스트크리스텐덤의 시대를 인식하며 해내야 한다. 

우리의 참조점은 콘스탄틴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이다. 

바벨론 포로기와 초기의 교회가 우리가 살펴야 할 시대이다. 

더이상 안전하게 우리의 영역이 확보되지 않는다.

우리의 실존으로 우리를 증명해 내어야 한다. 

 

다음 글부터는 그러한 시대에서 교회를 이루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