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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삶 그루터기

내가 선택한 삶. 그루터기 공동체

  알람소리에 잠을 깬다.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첫째 건우를 학교에 보내고 둘째 은우를 유치원에 보낸다. 아침을 챙겨먹고, 아래 공동체하우스에 내려가 커피를 내려 마신다. 잠시 나가 마당을 둘러본다. 개밥을 챙겨주고, 집앞도 치우고 잡초도 뽑고 개똥도 치운다. 그러면 셋째 시우가 잠을 깨어 아내와 놀고 있다. 아이와 놀며 책을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잡일을 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규정하기 어려운 시간들이다. 어느덧 아이를 다시 데려와야 할 시간이 되면 둘째 은우를 데리러 유치원에 간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기회를 틈타 아빠 차를 타고 같이 집에 온다. 오후부터는 주로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시작된다. 어떤 이는 약속을 하고 찾아오기도 하고, 불쑥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저녁이 되면 만남과 공적활동의 시간이 되곤 한다. 다시 밤이 되면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을 자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개인기도를 하고 책을 읽으며 서서히 졸음을 느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잠에 든다. 졸릴 때까지 책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말이다.

  거의 한 장소에 머무르며 살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한다. 주일에는 하루종일 공동체가 북적댄다. 공적으로 열린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 환대의 공간을 창출해낸다. 그렇게 거의 매일 한 장소에서 밥 세끼를 집에서 먹으며 살아간다.  





 별로 대수로울 것도 없는 공동체에서의 일상이다. 그러나 이 대수로울 것 없는 일상을 얻기 위한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사역을 하지만 사역이 재미없어지고 있었다. 일상의 삶에서 제자가 되는 것,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관점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와 멀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했다. 아내와 소통하는 시간,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부목사로서 교회에 필요한 부속품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흘러만 가는 삶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동안 노력해왔던 삶의 결론도 보지 못한채, 현실과 입장만을 이야기하는 그저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를 설득했다. 공동체적 교회를 세우겠노라고 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오랫동안 설득했다. 함께 하는 청년들에게도 자주 꿈을 이야기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무언가 시작할 거라고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함께 살자고 했고, 함께 집을 짓자고 이야기했다. 공동육아를 하고, 대안적 교육을 실천하자고도 했다. 말로만 해서는 안될 것 같아서 이를 위한 모임도 만들었다. 무언가 이루어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결국 현실적인 실천의 자리는 외롭고 왜소했다. 결국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노라고 이야기하며 나도 항복을 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시작한 발걸음을 다시 되돌리기 싫었다. 두렵고 떨리는 발걸음이지만 내딛자고 마음먹었다. 공동체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오랜 기간, 집짓기를 연구했다. 설계업체를 선정하고 업체와 함께 땅을 살폈다. 공부하며 준비하는 시간 1년, 설계업체를 선정하고 땅을 보러다니는 시간과, 설계를 고쳐갔던 시간이 1년. 무려 2년동안 집짓기를 준비했다. 시공업체를 선정했다. 사비를 털어, 대출까지 받아서 나무집을 지었다. 친환경적이며 생태적인 집을 짓고자 해서 최대한 시멘트를 쓰지 않았다. 유해한 자재는 사용하지 않고, MDF가 거의 없는 집을 지었다. 아내는 집을 짓는 내내 선택에 선택을 거듭했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집짓는 현장에 가서 일꾼들을 격려하고 모든 과정들을 기록했다.  

  3개월만에 집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까지 2개월 가까이 걸렸다. 집 하나가 만들어지고 살게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웃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고, 행정적 절차를 밟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변수가 생길 때마다 돈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대출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럼에도 집이 완성되었고, 이제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우리 가족과 용기있게 나를 따른 이들과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조금씩 예배의 자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럴듯한 간판도 없고, 홍보도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둘씩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어느날은 의자가 부족해졌다. 그때 당황스러움과 흥분을 같이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흥분에 휘둘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내 할일은 내 자리를 지키며 꾸준하게 환대하는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간간히 찾아온다. 누군가가 찾아오면 몇 주간은 그저 지켜본다. 어느 정도 공동체와 함께할 의지가 보이면 그때 조용히 물어본다.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함께 살아가는 문제는 비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청년들의 자활을 돕고자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도록 공간을 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것은 살기 좋은 공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들어오자마자 관계가 삐걱거렸다. 서로의 생각도 달랐고 기대치도 달랐다. 아이 셋을 키우는 우리 가정과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청년들의 삶의 방식도 참 달랐다. 이렇게 다른 상황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하는지도 감을 잡지 못했다. 큐티나눔과 기도회 식사시간을 만들었으나 이내 우리가 겉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좀더 관계가 쌓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쌓여야 한다는 생각에 좀더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다시 세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공동체적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나의 진심이 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답답함이 있어서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답함이 바로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길고 지리한 설득의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결국에는 인정하게 되었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공동체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오랫동안 함께 했던 형제 하나를 내 손으로 내보냈다.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결정이었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 나의 사역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가 내리는 것은 내게도 낯선 것이었다. 왜 그러한 일을 했겠나. 공동체를 보게 되는 전체적인 시각이 생겨남과 동시에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도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했다. 

  지금도 속이 쓰리다.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르고, 그 친구와 함께 있던 사진에 눈이 머무른다. 꿈에도 여러 번 나왔다. 공동체적 교회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게다. 



  꼬박꼬박 월급 가져다주던 직장에서 뛰쳐나온지 1년이 넘었다. 지금도 수입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어디에선가 카드값은 항상 생겨나고 월말이 되면 긴장이 된다. 어디에선가 예상치못한 돈이 들어온다. 그래서 은혜로 산다. 

  1년의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가 이 새로운 장에 들어선 것은 잘한 일일까를 묻는다. 적어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도 의미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싸우지는 않는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기 싫은 곳에 있어야 하는 일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본질에 걸맞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 내게는 행복이다. 

  이래저래 하게 된 일도 많다. 지방에서는 정착하기 힘들다는 아카데미 운동을 꽤 활발하게 하고 있다. GLC+도 광주에서 런칭하고 사역이 구체화되고 있다. 4년만에 성서광주 수련회도 시도하고 있다. 꽤 활동이 활발해졌다. 

  고통의 내용이 달라졌다. 전에는 답답하고 헛사는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다면, 지금은 고통스러운 이유가 다르다. 여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는 게 힘들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생각보다 먼 길인 듯 하다. 이 길은 쉽게 완성도 결과도 보지 못한다. 본질적인 일을 시도하되, 결과는 아직 미미하다. 상황과 현실이 지나치게 거대해 보인다. 이 일을 해서 이 일의 완성을 내가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힘을 내야 한다. 계속 희망적 전망을 일구어내며 독려하며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그러다가 나도 힘들고 지칠 때가 있어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숨어서 기도를 한다. 

  가만히 기도하는 자리에 앉아 나의 삶을 되돌아보노라면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내 자리에 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자리는 바로 이곳. 그리고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은 바로 이것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부르시는 그 자리였지만, 한치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1년전 공동체 여는 예배를 준비하며 만든 공동체 기획안을 살펴보았다. 불과 1년전의 구상인데 지금의 나의 생각과는 다르다. 지난 1년의 삶의 궤적이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이 된다. 



  이 삶을 2년, 5년, 10년을 살게 되면 나는 어떠한 생각을 하며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까. 그게 내 삶을 살며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내 자리를 찾고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시도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어려움도 겪고 긴장도 겪게 된다. 

  누군가가 1년전에 했던 결정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이다. 우리에게 삶이 주어진 것은 고난없이 애매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따르는 삶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게 우리가 배워온 것 아니겠나.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결국 가야할 길 아니겠나. 

  결국은 용기가 문제가 된다. 말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된다는 거다. 누가 용기있게 본질적인 것을 선택하며 살아내는가의 문제이다. 그러한 용자들을 많이 보고 싶다. 그래야 나도 용기를 더 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