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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풀어놓기

8. 교회는 없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만큼 교회에 대해서 혼란스럽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대형교회는 갈데까지 가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로 알려진 교회이탈현상은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이는 교회의 민낯이 드러나는 현상이자, 자연스러운 교회해체현상으로 보인다. 

세대로 살펴보자면 현재의 지역교회의 중심은 50대 이상이다. 

한국교회는 다음 세대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 없는 완고함에 붙들려 있다. 

 

교회도 사회의 일원이며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교회도 그 흐름에 걸맞게 변화해 갔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교회는 그 변화의 흐름을 현저히 놓치고 말았다. 

이제는 그 기회를 놓치고 따라가기 어렵다고 할만한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의 세상을 기준 삼아, 우리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교회라는 이름 안에 갇혀있는 모던함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난감하다. 

같이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교회에 대한 인식과 전제가 다른 것을 발견하곤 한다. 

교회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전제되는 사고가 교회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방해한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전제되어 있는 교회는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교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재구성하는 시도가 필요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에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제되어 있는 것이 강할수록 이러한 유연함에 방해가 된다. 

교회는 이러해야 한다는 전제가 강하고 갈망이 강할수록 이러한 유연함에 방해가 된다. 

나 또한 교회를 세워가다가 내 안에 숨겨진 이러한 완고함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미처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은 자아와 결합하여 고약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선배의 이야기처럼 주장하되 너무 많이 걸지는 말아야 했다. 

 

성경은 교회의 구조에 대해서 그리고 형태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 교회라는 용어조차도 많지 않고 불분명하다. 

우리는 초기의 교회가 어떠한 형태였을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창조적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고 익숙해져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구 중심의 가톨릭 교회 전통 이외에도 숱한 교회의 전통이 존재한다. 

지역별로도 다양한 교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예배하고 교회를 형성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설교중심의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교회의 특성일 뿐이다. 

이 모든 그림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교회됨을 드러낼지에 대해서 이 시대와 우리 자신에게 다시 물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회라고 전제하고 있던 것들이 이 시대와 소통하고 있지 못함을 더욱 느끼기 때문에 그렇다. 

다원화해가는 이 세상,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서 주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목회자를 가부장처럼 모시는 피라미드같은 교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종교개혁 이후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은 이제 끝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개별화된 그들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과연 이 세상에서 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 어쩌면 교회로 모이자고 하는 것 자체가 이 시대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왜 교회로 모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진지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야 한다는 당위보다 우리의 가치의 재고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의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드러나고 그러한 가치 위주로 모든 것이 재편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의와 정의를 세우기 위한 본질적인 움직임.

세상에서 소외되고 소통과 교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향한 연대의식. 

보다 인간답고 회복가능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함께 존재함 등. 

이러한 가치를 어떻게 하면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할 때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전제로서의 교회가 방해가 되기도 하는 현실을 본다.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의 구조.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헌신의 구조. 

교회를 방어하기 위한 교회만 인정하는 논리. 

이러한 것들은 교회 밖으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전제하지 않는 과감한 상상을 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포스트크리스텐덤의 시대. 

포스트모던적 해체와 재구성의 시대. 

거대한 전환의 시대. 

이 시대 앞에서 모던한 교회는 끝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러한 중에 미리 고민하고 이 시대와 조우해야 할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틀을 벗어야 한다. 

 

매 주일이 오면 나는 어떠한 존재로 살아가며 예배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교회를 이탈하여 고민하는 이들, 여전히 교회 안에서 부대끼며 고민하는 이들. 

그들과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같은 문제로 부대끼고 있다. 

더욱 치열한 고민과 성찰로 우리는 다음 시대를 불러와야 한다. 

괴롭고 힘들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인 지체들이 감당해야 할 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