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께 생각하기

책 "교회를 찾아서" 레이첼 헬드 에반스 _ 비아

미국 사회에서도 교회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어떠한 맥락에서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일명 '미국판 가나안 성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레이첼 헬드 에반스라는 여성작가는 복음주의 배경의 교회에서 자라났고, 꽤 열심있는 복음주의자로 살았다가, 점차 복음주의 신앙에 회의를 느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블로그는 영향력을 얻어가게 된다.

아마도 그녀가 써내려간 이야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종교자문위원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의 부제는 "사랑했던 교회를 떠나 다시 교회로" 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교회를 떠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다시 교회로 돌아가게 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여정이 쉽지 않았을 것임을 알기에 그 여정이 궁금했다. 

 

책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18-29세 청년 중 59%가 더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2000년을 기점으로 성년이 된 세대 중 1/4는 자신이 그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청년 세대는 이전 청년 세대보다 더 많이, 베이비붐 세대보다는 두배나 더 많이 교회를 떠났다. 

언론에서는 8백만여명의 청년이 서른이 되기 전에 교회를 떠나리라고 예상한다. 

 

감은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상황보다는 우리의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다. 

우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기독교는 소수문화이며, 어르신들의 문화에 속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심화되고 있다. 

모태신앙으로 붙들어놓고 있던 청년의 세대들도 미약해지고 있고, 심화되어가는 세대 갈등으로 인해서 신앙을 당연히 전수하는 것마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어린 시절 복음주의적 교회를 은혜롭게 경험한다. 

그 교회에서 경험한 세례의 경험을 인상적으로 기술하고, 자신을 본격적인 신앙으로 이끌었던 청소년 시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때 그녀는 누가 보아도 모범적인 복음주의자로 살아갔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자신의 세상이 자신이 살아왔던 복음주의권과 조화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결정적으로는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수정법안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음을 확인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담임목사와의 면담 후,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러한 시기를 보내다가 청소년부 시절에 자신을 지도했던 목사가 개척하는 교회에 합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개방적 사고가 가능한 교회를 3년 정도 시도했지만, 결국 그 교회는 정착하지 못했고 목사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교회를 접게 된다. 

저자는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추억, 쓰라린 기억을 더듬고, 더 나아가서 아름답게 죽는 것에 대해서까지 묵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바랐던 목회자가 자신이 원하는 목회를 하는 현장에 있었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그 경험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목회자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결국 그 교회는 지상의 교회로 유지되지 못했다. 

그들은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서로를 축복하며 교회를 해체했다. 

그 교회를 보면서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교회를 시도하지만 실패를 경험하는 이 시대의 동지들이 생각났다. 

이 모든 것들이 이 시대를 살아감의 대가, 더 나아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씨앗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또다시 방황을 하다가 결국에는 멀리 떨어진 성공회 교회에 정착해가게 된다. 

그녀를 끌어당긴 것은 성공회의 성사들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그에서 교회가 다양할 수 있지만, 교회가 교회로 남는 신비의 일면을 본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신앙의 정착지는 오랜 전통을 가진 성공회 교회가 되었다. 

 

이러한 그녀의 여정을 보면서 미국판 신앙 오디세이를 보는 듯 했다. 

복음주의 전통의 한계를 느낀 이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이머징 처치로 향하고 그들이 결국 발견하는 것은 성사적 교회, 오랜 전통과 신비를 가진 교회를 발견하고는 했다. 

최근에 이러한 주제의 글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제임스 스미스가 이야기하는 풍성한 함의를 지닌 성사적 교회가 그나마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견뎌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경험해온 교회전통에 대한 대안을 생각하면서 교회를 세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게 들었던 생각의 여정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반대해야 할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교회는 형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오랜 신비에 의지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교회는 그 어느 시대에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오랜 교회됨을 유지하며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시대의 도전은 여전히 거셀 것이고, 교회가 위축될 수 있겠으나 교회는 교회가 서 있던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교회가 자리해야 할 반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 오래된 것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 이 시대의 교회의 숙제인 듯 하다. 

 

교회가 신비라는 것은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실존적 겸손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심차게 교회를 세우는 것에 도전했지만, 요즘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더욱 어려운 문제는 서구의 사람들이 발견하는 오래된 것과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스미스의 급진 정통주의가 우리에게는 다른 맥락으로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오랜 것에 우리의 교회를 연결하는 것은 깊은 성찰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는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도 결부될 것이고, 근대화 속에서 상실한 우리의 정체성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라는 오랜 우물을 버릴 수 없음을, 그 안에서 씨름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금 발견하는 것은 값진 일이 될 것이다. 

현실의 무너진 현실교회에서 떠나서 본질적인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또한 걸어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