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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기

후발대형교회 현상에 대한 고찰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한 연구서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가 기획했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엮었다.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첫번째 글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실장님의 글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교회를 선발 대형교회와 후발 대형교회로 구분을 짓는다. 

그중에서도 주목하는 것은 199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형교회의 중심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나도 이에 대해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다. 

선발 대형교회의 경우에 교회가 성장할만한 사회적 여건이 분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95년 이후의 한국교회는 교세가 정체되거나 약화되는 추세가 뚜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대형화는 그치지 않고 있다. 

이는 교회를 성장시킬 사회적 여건과 함께 했다기 보다는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이념적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1.7%가 대형교회라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대형교회는 주일 성년교인 출석자 수가 2,000명 이상 되는 교회이다. 

이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대형교회는 약 880개이다. 

그중에서도 2만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를 초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에는 13-14개가 존재한다. 

참고로 미국은 초대형교회가 7개. 대형교회는 1,200-15,00개 정도 된다. 

비율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의 교회가 대형교회화 현상이 훨씬 더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후발 대형교회의 이념적 성향은 어떠한 것인가?

포슽민주화 시대 한국 사회의 공화제 논의를 선도했던 것은 뉴라이트 담론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정치의 영역에서는 금세 몰락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담론이 웰빙 문화를 중심으로 중산층에 유입되었다고 분석한다. 

일상의 '중산층 신사화'현상이다. 


선발 대형교회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잘 정리되어 있는 글이다. 

참조할만 하나 많이 알려져 있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니므로 관심이 있으면 책을 찾아보면 되겠다. 


저자는 후발 대형교회를 향한 호감의 내용을 '내구소비재 산업과 민주화의 효과로 시민적 개체성이 매우 활성화된 사회, 더구나 이데올로기적 총화보다는 개체적인 감각이 극도로 활성화된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느끼는 감가에 관한 것'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개개인의 감각적 선망의 요소들과 상응하는양식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소비성향을 통해 분석되는 것은 '보보스형 신귀족주의' 즉 쿨한 소시민적 신귀족주의라고 한다. 

이는 과도한 소비사회로 치닫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지배문화의 천박성을 지양하고 웰빙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귀족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특별히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우리의 경우에는 뉴라이트 담론의 일상화를 통해서 실현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교회의 핵심적 문화를 형성하는 이들에게서 느낀 것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과도한 소비를 일삼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모습은 아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대체 어디서 그러한 소스를 얻었는지 황당한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그 정보의 근원은 이내 뉴라이트 계열의 정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그들의 자의식은 뭔가 자신들이 고급한 것에 접목되어 있다는 인상을 던져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귀족적 의식이다. 


대형교회의 이론적 문화적 배경에는 그러한 귀족적 의식과 결합되어 있는 듯 하다. 

매우 어렴풋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몇가지 교회의 이야기를 한다. 


소망교회는 '흑백 2도 인쇄의 검소하면서도 깔끔한 주보'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창립 이래 한번의 예외없이 정확한 시간에 집회를 시작하고 끝내는 전통(주일 오전 11시 30분-12시 35분)을 지켜왔다고 한다. 

소망교회는 변화지향성 보다는 전통의 친숙함과 안정감을 미학화하는 방식의 신앙제도를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 교회의 결혼식은 부자의 경박하지 않은, 소박함의 미학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한다. 


반면 온누리교회는 소비사회의 속도성에 대하여 빠름을 느림의 가치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빠름의 효과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함으로써 신앙의 웰빙-보보스화를 실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온누리교회는 구채적 전통에 매이지 않고 실용적 예배공간의 해석, 미디어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한다. 

많은 지교회와 부서를 세우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신앙적 주체를 포스트근대적 삶의 긍정성과 결합시키는 시도이다. 

그래서 온누리교회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추천되는 교회의 하나로 알려져있다. 

그러한 한편으로 황영익 박사에 의하면 이 교회의 교인들의 99%는 타교회에서 수평이동한 신자라고 한다(황영익, 온누리교회:맥도널드식 교회, 맥처치현상).


이러한 교회의 현상이 명확하게 보보스형 귀족주의에 어울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이념화되고 있는 대형교회의 현상에 이러한 의식이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가 된다. 


민중신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며 '민중신학의 비평의 자리가 얼마나 난해하고 난감한 영역이 될 것인지를 예기'한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그에 있기 보다는 이러한 후발대형교회화 현상의 배후에 있는 이러한 귀족주의를 어떤 위치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절대 인정불가한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의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가능한 교회구조로 보아야 할 것인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러한 귀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형교회화는 해체의 대상일까. 공존의 대상일까.